부시 “북 HEU 의혹 여전 … 모든 핵 물질 포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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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가 이뤄진 직후인 26일(현지시간) 아침 일찍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북한의 핵 신고를 환영한다”며 “바른 방향으로 다가가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신고는 모든 과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진전이 반갑다. 그러나 첫발을 뗀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 핵 신고서를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만일 그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제재가 가해질 것”이라고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취소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미국의 이번 조치는 북한의 재정적·외교적 고립을 해소하는 데 약간의 충격(도움)만 줄 것”이라며 “북한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제재를 받는 나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옳은 선택을 한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나 틀린 선택을 할 경우 미국과 6자회담 파트너는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인권 학대와 우라늄 농축 활동, 핵실험과 확산,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그리고 한국과 주변국들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을 여전히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농축 우라늄(HEU) 핵프로그램 의혹 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북한이 고립을 끝내려면 모든 핵시설과 물질을 포기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부시는 이날 회견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김정일’로만 호칭했다. 그는 “우리는 다자외교가 기능하도록 노력해 왔다. 왜냐하면 미국이 김정일과 마주앉아 봤자 되는 게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일본을 방문 중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날 북한의 핵 신고가 “훌륭한 첫 걸음”이라면서도 “현 시점에서 (자신의 방북을) 고려할 때가 아니며,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 직후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해제한다는 방침임을 의회에 공식 통보했다. 그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증명서’라는 제목의 메모랜덤을 라이스 장관에게 보내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 요건을 충족한 만큼 의회에 공식 통보하고 관보에 게재하라”고 지시했다.

부시 대통령이 검증을 강조한 건 임기 내에 비핵화 3단계(핵 폐기)를 마무리한다는 목표가 있는 데다 공화당과 의회 내 보수파의 불만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북한 핵 신고서엔 핵무기에 관한 것이 빠져 있다.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 북한-시리아 핵 협력 의혹에 관한 정보도 제대로 담겨 있지 않다. 따라서 북한 핵 신고서는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신고해야 한다”는 기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적성국교역법에 따른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그건 북한 핵 문제를 부분적으로라도 해결해 가시적인 외교적 업적을 남기겠다는 의도에서 채택한 전략이다. 북한이 마침내 핵 신고를 하고,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며, 그 장면을 TV로 생중계할 수 있다는 건 부시 대통령에겐 아주 좋은 홍보거리다. “신고에 핵무기가 빠졌다는 게 좀 실망스럽지만, 핵 신고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을 봤다”(미 외교협회 찰스 퍼거슨 박사)는 평가라도 받자는 게 부시 행정부의 생각이다.

문제는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느냐 점이다. 국무부 측은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걸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미 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박사는 “북한 신고서에 핵무기가 빠졌기 때문에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라며 “핵무기 폐기 등 3단계 마무리 문제는 미국 차기 행정부의 손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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