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는 소를 광우병과 연결한 건 왜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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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의 번역·감수자인 정지민씨는 25일 “‘다우너 소(주저앉는 소)’에 대해 광우병을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왜곡이라고 번역 감수 중에 (제작진에게)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PD수첩이 4월 29일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번역을 감수했다.

정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다우너 소를 ‘쓰러지는 소’라고 의역하고 싶었다. 다우너 소와 광우병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고 쓰러진다고 다 광우병이라고 볼 순 없다는 건 자명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당 프로그램이 나가는 날 오전 보조작가에게 다우너 소를 광우병 논란에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한 소재라고 말했다”며 “보조작가는 ‘그러면 이 자료는 못 쓰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라는 식으로 말했고, 그런 자료들을 문제시 안 하면 방영 자체가 힘들다고 말한 것도 같다”고 전했다. 정씨는 전화·면접 인터뷰 대신 e-메일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또 PD수첩이 24일 해당 방송의 오역·왜곡 논란에 대해 “오역이 아니라 의역을 했다”며 해명 방송을 내보내자 이날 PD수첩 시청자 게시판에 자신의 입장을 올렸다. 이 글에서 의역·왜곡 논란과 관련, 정씨는 “번역 문제가 아니라 제작 의도나 편집의 ‘성향’ 내지는 ‘목적’이 강조돼 발생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PD수첩 조능희 책임프로듀서(CP)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정씨가 PD와 메인작가 등 제작진에게 다우너 소를 광우병 소와 연결하는 것이 왜곡이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보조작가에게 지나가는 말로 다우너 소가 어떻게 광우병과 연결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의문을 표시한 적은 있다고 들었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정씨와의 일문일답.

- 어떤 부분에 문제를 제기했나.

“(내가 검토한) 자료 중에는 미 연방조사관들이 ‘잘 걸어다니다가 도살 직전부터 쓰러지는 소들이 많았다’는 내용도 있었다. 분명치 않은 다우너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더라도 ‘쓰러지는 소’라고 정의하고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정도로 지적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PD수첩은 ‘대부분 사람들은 심지어 젖소마저 도축되는지조차 모를 겁니다’라는 장면에서 ‘젖소(dairy cow)’를 ‘이런 소’로 번역하는 등 동영상 속 소들을 ‘광우병 의심 소’로 연상하도록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보조작가가 ‘이런 소’라는 표현을 원했다. 나는 맥락 속에서도 ‘젖소’라고 얘기했지만 지적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다른 대목에서도 ‘광우병 의심 소’라는 표현이 나왔다면 분명 왜곡이다. 보조작가에게 감수 내내 미국에서 문제시하는 것은 동물에 대한 잔혹행위라고 했다. ”

-다우너 소를 광우병 걸린 소라고 한 사회자 발언 에 대해 제작진은 ‘생방송 도중 일어난 실수’라고 해명했는데.

“실수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논란이 없었다면 굳이 정정할 필요를 못 느꼈으리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광우병이 그만큼 위험하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거니까. 그 의도 자체는 자유라고 봐도 그 실수는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

-PD수첩이 미국 여성 고(故)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CJD)’을 ‘인간 광우병(vCJD)’이라고 번역한 것도 논란을 낳고 있다.

“실제 빈슨의 어머니가 두 용어를 혼동하기도 했고 보도하는 측에서는 유족의 우려를 반영할 수 있다고 본다. 그 부분은 제작진의 해명을 믿고 싶다.”

기선민·강인식 기자

◇다우너(downer) 소=일어서지 못하거나 걷지 못하는 증세를 보이는 소를 일컫는다. 원인은 다양하다. 출산이나 젖을 많이 짠 뒤 칼슘·마그네슘 부족으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거나 모기에 물려 아카바네병 바이러스에 감염됐거나, 광우병·파상풍 등 각종 질병에 걸렸을 때도 다우너 증세가 나타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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