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역사 흔들어 놓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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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각 정당의 공천양상을 보면 정치파괴라는 말이 실감난다.
이번 총선이 앞으로의 정국 향방을 결정하고,거기에 3金씨의 정치생명이 걸려있다보니 정치판의 분위기가 살벌하기 짝이 없다.『사생결단(死生決斷)한다』느니 『필사즉생(必死卽生) 』이니,마치죽음의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비장한 말들이 구호처럼 나부낀다. 그런 판이니 각 당의 공천에 기준을 요구하는 일은 어려울지도 모르겠다.그저 당선만 되면,표만 끌어온다면 무엇이든,누구든좋다는 식의 이념도 없고 노선도 없는 공천이 횡행한다.공천파괴고 노선파괴다.
당연히 중산층의 안정희구성향에 의존해야 할 집권당이 『개혁과변화』를 내세우는가 하면,정권교체의 변화를 노려야할 야당이 『안정만이 살 길』이라고 외친다.
현상을 그대로 지키자고(保守)해야 할 것같은 여당이 혁신을 부르짖고,이에 도 전하는 야당이 보수를 자처하면서 이번 선거를「보혁(保革)」의 이념대결로 몰아가겠다고 나선다.
그야말로 정치적 아노미현상이 극대화되고 있는 느낌이다.국민들은 도대체 이번 선거에서 어디를 겨냥하고 누구를 지지해야 할지알기 어렵게 되었다.야당의 정권교체 주장을 지지하는데 자신의 투표구에 나선 후보가 여전히 5,6공 세력으로 분류되는 자라면그는 어느 곳에 표를 던져야 할지 망설이게 될 것이다.여당의 안정적 중도보수 성향에 의존하고 싶은데 국회의원 후보가 만약 급진개혁을 부르짖는다면 그 표 역시 갈 곳을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최근의 정치상황은 그런 극단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여당안에는 극좌와 극우가 공존하고 있어 자기들끼리 이념갈등을 노출한다.야당은 보수색깔을 덧칠하려고 한때 그들을 억압하던 세력을끌어들여 오히려 재야세력이 찬밥을 먹는 꼴이 연출되 기도 한다. 일본의 정치를 두고 혼네(本音.속뜻)와 다테마에(建前.겉모습)가 서로 다르다고 흔히들 비아냥대지만 지금 우리 정치판의 경우는 당마다 혼네도 여럿이고,다테마에도 각양각색인 삼면육비(三面六臂)의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하기는 선거에서 이기는게 장땡이고 보면 그것을 위한 정략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눈감아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몇가지만은 그래도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고 본다. 그 첫번째는 물론 우리 체제에 대한 부정이나 전복을 노리는 세력,전술적인 위장망(僞裝網)을 뒤집어 쓰고 체제내 침투를노리는 세력을 진보.개혁이라는 이름아래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이것은 이미 누차 강조해왔던 기본적 명제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또 한가지는 우리가 역사의 수레바퀴를후진시키는 짓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더군다나「역사바로세우기」를 가장 중요한 국정지표로 내세운 집권당으로서는 역사를 바로 세우지는 못할지라도 역사를 헷 갈리게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언론 통폐합의 장본인으로 수많은 언론인을숙정한 인물,군부세력의 핵심으로서 12.12때 군부대를 이동시키는등 신군부의 정권찬탈에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들이 버젓이 포함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나는 현정부가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지난날 군부 강권통치의 잘못된 유산들을 바로잡고 원상복귀시키는 조치들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그것이 당장은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역사를 비트는 행위를 한 인물들을 총선전략이라는 구실로 포 용하는 행위부터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적지(敵地)를 흔들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고,강력한 득표력을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12.12,5.18의 핵심에서 일부러 제외시켜가면서 공천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원칙한 행위가 될 것이며 보기에 따라서는 국민을 속이는 행위가 될 것이다.최소한의기준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바로 세울 것인가.
(편집국장대리) 金榮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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