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소재 첫 방화"내일로 흐르는 강" 곧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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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동성애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 『내일로흐르는 강』이 20일 코아아트홀에서 개봉된다.서구영화에서 동성애는 사람사이의 소통을 차단하는 문화적 억압 장치를 걷어내고 진정한 사랑의 실체를 추출하는데 자주 사용되는 틀.동성애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장 주네의 『사랑의 노래』(50년)에서부터최근의 『크라잉 게임』『패왕별희』『토탈 이클립스』등이 모두 남성의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동성애는 아직 미개척 영역이다.극단적으로 희화화된 게이들이 간혹 눈요깃거리로 스크린에 등장했을 뿐이다.이런 점에서 『내일로…』은 이 분야에 새로운 획을 긋는 영화라 할만하다.
『내일로…』에는 희화화된 게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대신 극히 정상적인 가족을 가진 중년의 남자와 외로움을 많이 타는 30대후반의 노총각이 등장한다.이들이 동성애 관계를 맺게 되는 과정을 한국현대사를 압축하는 한 가족사를 통해 설득 력 있게 풀어나가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정민의 어머니는 남편이 빨갱이로 몰려 죽은 뒤 남매를 데리고대지주 박한섭의 네번째 처로 들어간다.박한섭은 가족들 사이에 폭군처럼 군림하는 완고한 노인이다.박한섭의 아들로 태어난 정민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말수적은 아이 로 성장한다.
영화의 1부는 박한섭의 성격으로 인해 가족들이 겪는 다양한 갈등을 압축된 삽화로 그린다.그리고 이 가족관계가 바로 근현대사를 지배해온 사회관계의 축소판임을 암시한다.
영화의 2부는 이같은 환경에서 자란 정민이 동성애를 맺는 현실의 상황이 펼쳐진다.정민은 승걸과 연인처럼 사귀지만 육체관계를 맺진 않는다.그에게 승걸은 연인이고,형이며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그의 형은 가출했다 홧김에 지원한 월남전에 서 전사했고아버지는 화내는 기계였다.한마디로 승걸은 정민이 살아오면서 박탈당했던 것을 대변한다.그래서 이 영화의 동성애는 가정의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와 사회의 살인적인 독재정치에 상처받은 영혼들이구애에 대한 열망을 타전하는 송신장 치라 할수 있다.그것은 근현대사를 통과하며 한국사회가 깊이 묻어두고 있는 상처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내일로…』이 던져주는 충격은 그 금기의 공간을조심스럽게 열어 젖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재학중인 대학생이 스스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선언하는 현실을지금까지 영화는 따라가지 못했다.한국형 동성애 영화의 한 전형을 보여준 『내일로…』은 다가올 새로운 문화적 행렬의 맨 앞에선 인상이다.
몬트리올 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이 영화를 『새롭고 삶의 무게가 실린 작품』이라고 격찬했다.『내일로…』은 10억원이 평균 제작비인 요즘 불과 3억5,000만원을들였다.스타 연기자가 한 명도 없다.대신 명계남 .이인철.이대연등 연극배우들이 대거 기용됐다.박재호(38)감독은 90년 『자유부인』을 만들고 영화를 포기했다가 이번에 직접 각본을 쓰고연출을 했다.『내일로…』은 한국영화의 내일을 밝게 해주는 독립군 영화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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