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를 꿈꾸며, 대 이어 … ‘물질’ 배우기 구슬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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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한림읍 주민자치위원회가 귀덕2리 포구에 마련한 첫 해녀양성과정인 ‘한수풀해녀학교’에 입학한 1기생들이 검은색 잠수복을 입은 현역 해녀들에게 물질요령을 배우던 중 잡아 올린 해산물을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소라를 잡은 결혼 이민자 델리아씨.

“어떵 헌 게 구쟁기라고 마심(어떤 게 소라라구요)?”

20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포구. 물안경과 잠수복을 갖춰 입은 30여명이 포구 앞 바다에서 ‘물질’(잠수작업을 일컫는 제주사투리)에 열중하고 있다. 하지만 여느 해녀와 몸놀림이 다르다. ‘스승’인 3~4명의 할머니가 익숙한 손놀림을 보여주자 젊은 여성들은 그때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이들은 긴장한 얼굴을 뒤로 하고 수심 2~3m 바닷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내 몇몇은 서툰 솜씨였지만 물속에서 잡아 올린 소라를 보여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제주시 한림읍 주민자치위원회가 개설한 해녀교육 프로그램인 ‘한수풀 해녀학교’가 첫 제자 배출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해녀학교는 억척스럽게 삶을 이어온 제주해녀들의 강인한 개척정신과 삶의 지혜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전국에서 처음 설립한 해녀 양성과정. 지난해 말부터 준비에 들어가 지난달 9일 문을 열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간 동안 마을 주민자치센터에서 이론강의를 듣고, 이후 포구에서 현역 해녀로부터 직접 ‘물질’요령을 전수받는 방식이다.

해녀물질을 가르쳐주는 전국 첫 수업이란 소식을 듣고 강좌를 신청한 사람은 34명. 하지만 수강자들의 면면을 보면 예사롭지 않다.

서울에서 운수업을 하는 최춘호(50)씨 등 2명은 남성인데도 ‘해남’을 꿈꾸며 열심히 물질을 배우고 있다 또 이 마을에 사는 필리핀 출신 델리아(33)씨는 2000년 결혼, 이 마을에 정착한 지 8년 만에 해녀물질 배우기에 나섰다. 결혼 이주여성으론 첫 해녀 ‘등판’을 고대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 외에도 제주의 각지에서 온 30∼50대 주부 31명이 ‘테왁’(부력을 이용, 잡은 해산물을 넣어 두는 그물을 매달아 놓는 기구)에 매달려 물질을 배우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해녀교육을 받게 된 사연도 가지가지다. 서울에서 온 최씨는 “어릴 적부터 바다가 보이는 곳에 터잡고 살고 싶고, 바다와 더 친해지고 싶어 물질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정순(44·여·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씨는 “과거 어머니가 해녀일로 우리를 키웠는데 그 고생도 알고 싶고, 기회가 되면 해녀 일도 하고 싶었다”며 수업을 받게 된 이유를 털어놨다.

해녀학교의 강좌는 해녀 도구 사용법, 잠수·호흡법, 수영요령 등 이론 교육과 소라와 전복을 직접 채취해 보는 실습 위주로 짜여 있다. 이론교육은 해녀학교의 교장인 임명호 귀덕2리 어촌계장이 맡고, 이 마을의 현역해녀 3~4명이 보조강사로 나서 물질요령을 터득하도록 해준다. 8월 말이면 모든 강좌를 끝내고 수료증을 준다.

델리아씨의 시어머니이자 현재도 물질을 하는 고순아(75)할머니는 “억척스럽게 물질을 배우려는 며느리가 기특하다”며 “기회가 되면 나도 강사로 나서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 교장은 “해녀들이 모두 나이가 들고 있고, 명맥을 잇기도 어려워 젊은 세대들이 배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자 해녀학교를 개설했다”며 “학생들이 진지한 자세로 물질을 배우고 있어 진짜 해녀가 될 분들이 꽤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 학교의 모든 과정을 이수한 수강자가 해녀가 되기를 원하면 해당 지역 어촌계에 등록해 해녀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줄 방침이다. 1970년 1만4100여명에 이르던 해녀는 80년 7800여명, 90년 6800여명, 지난해 5229명 등 감소추세다. 게다가 현재 50세 이상이 90.4%를 차지하고 있고, 30세 이하 현역 해녀는 아예 없어 해녀문화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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