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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임기 너무 길지 않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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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런 농담을 들었다. 총선 격전 지역의 여론조사에서 있었던 일. 누구를 찍겠느냐는 질문에 지나가던 유권자 세 사람이 연이어 투표 때 기권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이유를 묻자 첫째 사람은 "내 나이가 60세를 넘었으니까요", 둘째 사람은 "입후보한 네 사람 중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셋째 사람의 대답은 "네 사람 모두를 내가 너무 잘 알지요. 그래서 나는 투표하기 싫소."

이들의 냉소적인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기권만큼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유권자 쪽에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훌륭한 제도이면서도 문제점 또한 적지 않아 많은 실험과 훈련이 요구되는 제도다. 후보자들이 낯설다면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고 비교 평가해보는 수고를 치러야 한다. 마음에 드는 인물이 없더라도 그 중에서 누군가를 차선으로 선택해 주어야 한다. 민주주의 자체가 최선의 제도라기보다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도보다 낫기 때문에 채택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하겠다.

지난 40년간 우리 국민의 노력으로 경제는 도약이 가능했지만 정치 쪽은 아직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낙후된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방면의 제도개혁이 필요한데 그 중에서도 국민이 보다 자주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긴요하다고 본다. 현재 선출직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각각 5년과 4년의 임기를 누리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떨지 모르나 우리 실정에서는 길다고 생각된다. 우리 사회의 역동성, 그리고 국민의 기질과 정서에 비추어 보면 그런 감이 든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의 경험을 보면 취임 후 3년째까지는 좋은 실적을 내면서 국민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나 그 이후 지지율은 폭락했고 나머지 2년 가까이를 레임덕 신세로 보낸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는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국회의원들을 보면 상당수가 선거법 등 법규를 어겨 기소가 되고도 거의 4년간을 버티거나 그 사이에 철새가 돼 이합집산을 계속해가며 선거구민들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들을 해오곤 했다. 그러나 임기가 길다 보니 제대로 응징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그보다 헌법을 고쳐서라도 임기를 1, 2년씩 줄여 선거를 통한 국민의 심판 기회를 늘리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임기가 짧아지면 선거가 잦아져 비용이 커지고 정국불안과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반대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돈 안 드는 선거가 정착되고, 평일에 일하면서 투표하도록 한다면 비용 문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한 선거로 정권이 바뀌더라도 경제운용이 경험이 풍부한 관료들과 민간 경영인들의 손에 맡겨져 있다면 불확실성도 커질 이유가 없다. 탄핵재판이 진행 중인 데다 총선이 겹쳐 있어도 경제가 더 나빠지지는 않은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정치 경색이 불러올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한다면 선거를 자주 하더라도 제때에 실정을 심판해 주는 것의 유리함이 더욱 분명해진다. 정치와 경제의 파탄을 사전에 예방해 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임기는 길게 해두고 중간평가나 국민소환에 의존하는 방식은 파국의 장기화를 불러오고 결국은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정치발전을 위해 국민이 단기적으로 다소의 불편이나 비용을 부담해 준다면 장기적으로는 큰 이득을 누리게 될 것이다.

노성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