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출 현장일기] '영어라는 괴물'과 아직도 고군분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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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민 KBS2 '대한민국 1교시' 조연출

'대한민국 1교시'를 편집하는 월요일 아침이면 KBS 신관 지하의 컴퓨터 그래픽실에선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맞춤법이 이게 맞나" "사전 한번 확인해 봐" "a가 들어가나. 아니면 the인가." 사전을 뒤지고 영어 교사들에게 전화하면서 미심쩍은 부분을 확인하고 수정한다. 대기실에서도 출연자들은 "이거 자신 없는데…" "틀리면 어떡하지"라며 다들 긴장된 모습이다. 그러나 막상 녹화에 들어가면 언제 걱정했나 싶게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출연자, 단어 몇 개에 동작을 섞어가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출연자도 있다. 어떤 이는 솔직하게 "영어는 정말 자신없어요. 못하겠어요"라고 밝혀 박수를 받는다.

그렇다면 제작진의 영어실력은? 학창 시절과 입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배울 만큼 배웠건만 영어란 놈은 여전히 어렵고 자신이 없다. 자막을 쓰다가 헷갈려 사전과 책을 뒤지고, 외국인 패널의 말을 몇 번씩 확인하며 받아 적을 때 느끼는 답답함이란…. 자막에 썼던 단어의 철자가 잘못된 걸 방송이 나가고 나서야 깨달을 때는 정말 당혹스럽다. 게다가 실수를 지적하는 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쏟아질 때의 참담한 심정은 아무도 모를 것 같다.

'대한민국 1교시'가 영어를 다루는 이유는 영어가 특별하고 대단한 존재여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영어를 조금이라도 알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어를 못하면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보통 사람에게 영어는 잘하면 좋지만 못한다고 주눅 들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TV 앞에서 부담없이 웃고 즐기는 사이에 '아, 저렇게 말하면 되네' '영어 공부 한번 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 '대한민국 1교시'가 시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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