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 '올리가르히의 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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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러시아의 신흥 재벌을 총칭하는 올리가르히(Oligarch)를 사상 처음으로 해부한 세계은행의 보고서가 나왔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세계은행 모스크바 사무소 보고서를 인용, 23개 개인 및 기업으로 구성된 올리가르히가 러시아 전체 산업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고 7일 보도했다.

세계은행의 연구 결과 이들 올리가르히는 러시아가 1990년대 공산국가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할 당시 주식담보 대출 방식으로 알짜배기 국영기업들을 헐값에 불하받아 급성장했다. 사유화의 혼란 속에서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석유.가스 등 에너지 산업과 철강.알루미늄.니켈 등 원자재 산업이 수십여명의 올리가르히의 손에 떨어진 것이다.

올리가르히가 소유한 기업들이 러시아 전체 취업자의 16%를 고용하고 금융자산의 17%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맞서다 구속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사장이나 잉글랜드 축구팀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계은행은 "이들은 연방 및 지방정부에 대한 로비를 통해 자신들의 사업에 대한 각종 이권을 보장받아 왔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은 "각종 특혜에도 불구하고 올리가르히 기업의 실적은 다른 민간 기업이나 외국인 기업에 비해 나쁘다"며 "러시아도 100여년 전의 미국처럼 반독점법 같은 독과점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러시아 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 총리는 "올리가르히는 지난 수년간 러시아의 성장을 이끌어온 경제의 엔진"이라며 "국영기업에 비해서는 올리가르히가 러시아 산업개혁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서 러시아 연방정부 소유 국영기업이 전체 산업 매출액의 20%, 지방정부 소유 기업들도 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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