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바 ‘제2 랠프 네이더’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미국 공화당이 자유당 대통령 후보인 밥 바(Bob Barr·59·사진) 전 연방 하원의원을 두려워하고 있다. 공화당 출신인 바가 11월 대선에서 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존 매케인의 표를 갉아먹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가 매케인의 표를 조금만 잠식해도 정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게 공화당의 우려다.

2000년 공화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 매케인을 도왔던 공화당 선거전략가 댄 시누르는 22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바는 2008년의 랠프 네이더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네이더는 2000년 대선 때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의 표를 얻었다. 그가 대선에서 2.7%를 득표하는 바람에 민주당 앨 고어 후보는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졌다.

이번엔 바가 그런 ‘훼방꾼(spoiler)’ 역할을 할지 모른다. 바는 “부시 정권에 실망한 공화당 지지자가 1차 공략 대상”이라며 “매케인으론 나라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바는 원래 골수 공화당원이었다. 당에서 ‘이단아’로 불린 매케인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1994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당선돼 4선을 지낸 그는 이라크전을 적극 찬성했다. 테러용의자에 대한 철저한 신문을 규정한 애국법을 옹호했고, 동성애자 결혼은 강력히 반대했다.

빌 클린턴의 민주당 행정부 시절 그는 백악관 인턴이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성 스캔들을 일으킨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하원에서 탄핵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그는 2년 전 탈당하면서 다른 사람이 됐다. “이라크전과 애국법이 미국을 망친다”며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을 비난하는 데 열중했고, 동성애자 결혼을 찬성하는 등 거의 모든 핵심 이슈에 대한 생각을 정반대로 바꿨다. 공화당에선 그를 변절자라고 욕했지만 이라크전에 질린 당 이탈자들은 “바른 말을 잘한다”며 박수를 보냈다.

워싱턴 포스트는 최근 “바가 펜실베이니아·노스캐롤라이나·인디애나주 등에서 선전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AP통신은 “바는 특히 고향인 조지아주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흑인이 많은 이곳을 오바마가 공략하는 가운데 바가 공화당 표 일부를 챙기면 매케인이 고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매케인이 공화당 안방이나 다름없는 조지아에서 흔들릴 경우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