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노예계약' 솜방망이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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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지망생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성되는 이른바 '노예계약'이 철퇴를 맞은 것인가. H.O.T. ,보아 등을 배출한 대표적인 연예제작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가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패소했다. 전 H.O.T. 멤버 문희준(26)씨 등 소속 연예인이 SM과의 계약을 파기할 경우 사실상 지급이 불가능할 만큼 엄청난 위약금을 물도록 계약한 것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거래'라는 공정위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무명의 신인을 발굴해 스타로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SM 측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음반 한장을 기획.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7억원, 노래.춤 연습 등 훈련비용은 1인당 연간 1억2000만원이다. 하지만 연간 700여장이 출시되는 기획사의 음반 중 손익 분기점인 10만장 이상 판매되는 것은 5%에 불과하다. 기획사는 "이처럼 투자 위험이 큰 만큼 특수한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투자 위험은 투자자가 부담해야 한다"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SM은 공정위가 2002년 7월에 내린 시정명령을 이행해야만 한다. 그런데 공정위의 시정명령은 '가수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다시 해서는 안 된다'는 재발 방지를 위한 선언적 명령에 불과한 것이다. 즉 기존에 가수와 연예기획사가 맺은 '불공정한' 계약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 앞으로 또다시 그 같은 계약을 한 사실이 적발될 경우에만 '시정명령 불이행죄'로 형사처벌(2년 이하의 징역,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할 수 있다. 결국 SM은 이번 판결로 이미지 훼손 이외의 실질적인 피해는 보지 않은 셈이다.

이번 판결이 업계 전체로 확대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앞으로 타기획사가 불공정 계약을 한 게 적발되더라도 일단 공정위가 '시정명령'을 내린 뒤 재적발되면 형사처벌의 수순을 밟게 된다.

게다가 공정위가 연예기획사에 대해 항상 감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통상 계약서가 가수와 기획사 사이의 비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른바 '노예계약'이 근절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공정위의 이번 시정명령은 솜방망이에 그친 셈이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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