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이자 할부 확대=무이자 할부는 원래 신용카드사와 가맹점이 공동 마케팅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실시하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2~3개월 무이자 할부는 상시화된 상태다. 최근엔 8~10개월을 할부로 하면서 일부는 무이자, 나머지는 고객이 이자를 부담하는 식의 변형된 무이자 할부 마케팅도 등장했다. 첫 달만 할부 이자를 내면 나머지 9개월을 무이자로 할부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영업에 힘입어 카드 할부 이용액은 지난해 3분기 13조6000억원에서 4분기 16조3000억원, 올해 1분기 18조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카드업계의 한 관계자는 “무이자 할부는 고객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강하기 때문에 한 업체가 무이자 할부를 하면 다른 곳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무이자 할부가 장기화할 경우 카드사의 수익성이 나빠지고, 불황으로 할부금을 제때 갚지 못하는 소비자가 늘면 부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은행의 신용카드 분야 연체율은 지난해 말 1.3%에서 지난달 말 1.8%로 높아졌다. 이는 은행권 전체의 연체율 1.04%를 웃도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정찬우 선임연구위원은 “무이자 할부 등을 통해 부적격자에게 과도한 신용 한도를 주고,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지면 부실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 당국과 카드업계는 2003년과 같은 카드 대란이 재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병구(롯데카드 사장) 여신금융협회장은 2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가입자 확보 경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신용평가를 거쳐 부적격자에겐 카드를 발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다만 여러 장의 카드를 보유한 사람의 연체 가능성은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수익성을 해치는 과도한 무이자 할부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신금융협회는 회원사들 사이에 이용 한도와 실적 정보를 공유하는 고객의 대상 범위를 현재 카드 4장 이상 보유자에서 3장 이상 보유자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카드사들에 장기 무이자나 수수료 할인 등의 마케팅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불법적인 길거리 모집도 단속하기로 했다.
김원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