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촛불 밑이 어둡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캐럴의 부모는 딸이 친구 제인의 집에서 노는 걸 꺼린다. 그 부모가 집에 총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뒤뜰에 수영장이 있는 로라의 집에서 놀게 한다. 캐럴의 부모는 딸을 보호할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믿으며 안심한다. 어느 부모인들 안 그렇겠나. 하지만 『괴짜경제학』을 쓴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 스티븐 레빗에 따르면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이유인즉슨 이렇다. 전국에 600만 개의 개인 수영장이 있는 미국에선 매년 550명가량의 열 살 미만 어린이가 익사사고를 당한다. 1만1000분의 1의 확률이다. 또 미국에는 대략 2억 정의 개인 소유 총기가 있는데 매년 175명가량의 열 살 미만 어린이가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100만분의 1의 확률이다. 결국 캐럴이 로라의 집 수영장에서 익사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제인의 집에서 총을 갖고 놀다 목숨을 잃을 가능성보다 100배나 크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했듯 두려움은 과학이 아니다. 확률이야 어쨌든 수영장보다는 총이 겁나는 거다. 그래서 레빗은 다른 전문가 입을 빌려 ‘위험=유해물+분노’라고 정의한다. 단 한 건의 광우병 발병으로 미 전역에 쇠고기 기피 파동이 일었던 2004년 나온 정의였다. 이 정부에서 누구 하나라도 이 등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을 터다. 수만 개의 촛불로 표출된 분노를 말이다. 그 분노는 권력 핵심부의 오만을 철저히 응징했다. 우리 정부의 백기 항복을 받아냈고 미국한테서는 재협상 같은 추가협상을 얻어냈다.

이제 제인의 부모도 이웃의 불안을 알았다. 총을 상자에 넣고 자물쇠로 잠가 다락방 깊숙한 곳에 숨겼다. 그러니 제인의 부모와 화해해야 한다. 총을 내다버리라 할 수는 없잖은가 말이다. 지금부터 할 일은 딸이 매일 놀러 가는 로라네 집을 살펴보는 거다. 수영장 바닥이 너무 미끄러운 건 아닌지, 깨진 유리조각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더욱 위험한 유해물이 뭔지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위험요소는 도처에 널렸다. 그중에서도 시급하게 치워야 할 위험은 공공부문의 방만경영과 모럴 해저드다. 촛불시위 와중에도 경고음은 계속 울렸다. 한 국책은행은 대학교에 위탁교육시킨 직원들을 학기마다 해외연수 명목으로 관광을 보내는 데 2년간 7억원 가까이 썼다. 한 공기업 직원들은 2년 전 문 닫은 해외포럼에 참석한다고 거짓 보고서를 내고 스위스 관광을 했다. 출장으로 꾸며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을 보고 온 지방 공무원도 있다. 일개 팀장이 전체 예산의 절반 가까운 돈을 부실 기업에 특혜 대출해줬는데 그 사실조차 몰랐다는 허수아비 사장이 있는 공기업도 있다. 그 기업은 적자인데도 임금은 정부 가이드라인을 두 배 넘게 올리는 발빠름도 보였다.

세종로에 촛불이 넘실거릴 때 쾌재를 부른 이들이 국민 세금을 쌈짓돈으로 여기는 이들 ‘신의 직장’ 사람들이었다. 공공부문 개혁을 외치던 정부가 촛불 앞에서 휘청거리는 걸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은 사람들이 ‘하루 수돗물 값 14만원’ ‘감기약 값 3만원’이라는 민영화 괴담을 퍼뜨리던 이들이었다. 국민 세금이 줄줄 새는 공공부문을 개혁하라고 뽑은 대통령이고 정권 아니던가.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가 무 하나 자르지 못한 역대 정부 꼴이 되게 생겼다. 이미 물 건너갔다는 탄식도 들린다.

이제 정말 촛불을 꺼야 할 때다. 지금까지의 촛불이 국민 뜻을 거스르는 정부에 대한 분노의 회초리였다면 지금부터의 촛불은 나라 전체를 좀먹는 유해물들의 길을 밝히는 청사초롱이 될 뿐이다. ‘위험=유해물+분노’의 등식을 뒤집으면 ‘유해물=위험-분노’가 된다. 분노를 추스르고 바라보면 그 유해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것은 광우병보다 훨씬 가까이 있고 훨씬 위험하며 훨씬 파괴력이 큰 것들이다. 그들이 또 한 번 승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