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인기'에 편승하는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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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치권의 방송사앵커 모셔가기가 그칠 줄 모른다.MBC앵커 정동영(鄭東泳)씨가 8일 국민회의에 입당,15대총선에 출마키로 했다.뿐만 아니다.
이미 박성범(朴成範).이윤성(李允盛).맹형규(孟亨奎)씨등 각방송사의 스타 앵커들이 모두 금배지의 길로 뛰어들었다.총선 표밭은 마치 시청률 올리기에 혈안이 된 방송사 스튜디오를 연상케할 정도다.
방송과 정치권간의 쌍방향에만 모아진 관심의 눈을 이쯤에서 조금 돌려보자.
요즘 많은 지식인들의 우려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것이다.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비디오등 영상매체에만 빠져 일시적인 감성(感性)만을 중시하고 즐 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걱정이다.자신과 사회를 나름대로 사색하고 고민했던 이전 분위기는 박물관 구석의 먼지 쓴 골동품쯤 취급받는 시절이다.데뷔 한달만의 햇병아리 탤런트도 오빠부대의 환호만 자아낸다면 당장 주연급으로 기용된다.
한번 인기를 끈 탤런트라면 주종목을 가릴 것도 없이 가수.MC 동시겸업은 당연한 수순이다.시청률과 돈벌이가 검증의 잣대일뿐 다른 이유는 성가신 게 요즘 「감성시대(感性時代)」의 심각한 후유증이다.
다시 정치권을 보자.가벼운 감성 시대에 슬며시 편승하지는 않았는지, 또 이를 더욱 조장할 우려는 없는지 묻고 싶다.물론 방송사앵커의 정치적 선택은 완전한 본인의 자유다.
그러나 정치권이 『표(票)만 된다면…』이라는 등식으로 유권자를 오빠부대쯤으로 생각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엊그제까지 「공정(公正)」이 생명인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들이갑자기 『개혁에 힘을 보태고 싶다』며 여야정파에 가담하는 데는어리둥절함을 넘어 미묘한 배신감마저 느낄 수밖에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정치권이 앵커 본인의 정책노선이나 철학을 충분히 검증할 시간을 가졌는지도 의문이다.다분히 화면에 비친 얼굴과 말이 신뢰감을 주고 인기가 있으니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가벼운 「감성의 선택」이 아니었는지 의문을 풀 길이 없다.
더구나 「거물정치」의 틀을 한치도 벗지못한 우리네 정치현실에서 이들 앵커정치인들이 자칫 거물들의 인기를 위한 총선용 액세서리로 쓰이고 버려지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은 이제 희끗희끗한 머리로 데스크에 앉아 준엄히 정치인을 꾸짖는 서구 앵커들의 권위가 무엇인지를 차분히 생각해야 할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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