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陽曆사용 백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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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이가 몇이냐」고 물으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대답은 여러가지가 나올 수 있다.요즘엔 서양식으로 「몇년 몇개월」이라고 대답하는 젊은층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아직도 「한국 나이로」 혹은 「우리 나이로」 몇살이라고 대답한다 .그 경우 서양식 나이와는 한살 내지 두살의 차이가 나게 된다.특히 음력으로 동짓달이나 섣달에 출생한 사람의 나이가 오락가락하는가 하면 띠(支)가 달라지기도 예사다.양력으로 따지면 대개 이듬해로넘어가기 때문이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설날.한가위등 아직도 모든 명절이 음력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보면 우리네 삶에서 음력을 몰아내기는 어렵게 돼있다.우리가 1,000여년 동안 사용해온 음력,곧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은 본래 농.어업의 편리함과 깊이 연관돼 있다.1년 열두달 24절기는 농사의 기본이 되고 절기에 따른 밀물과 썰물은 고기잡이의 기본방향을 제시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때 관상감(觀象監)은 매년 국왕의 직접 지휘아래 책력(冊曆)을 만들어 돌림으로써 농.어업의 길잡이 역할을 도맡았으며,「단오(여름)선물은 부채요,동지(겨울)선물은 책력」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됐다.현대의 과학자들조차 음 력이 양력보다 훨씬 과학적이라고 공언하는 걸 보면 태음태양력을 만들어낸 고대인들의 지혜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같다.
고종(高宗)32년 을미(乙未)8월 정변(政變)을 겪고 나서 돌연 음력을 폐지하고 조선개국 504년 11월17일을 505년(1896년)1월1일로 정해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개혁작업」의 일환이었으니 예나 이제나 개혁바람은 서 민들의 삶에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양력 사용을 공식화한지도 한 세기에 이르건만 음력 기준의 음양오행(陰陽五行)에 따라 길흉화복을 점치는 풍습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사주궁합을 따져 결혼도 하고,그 날의 일진(日辰)을 헤아려 결혼.장례.이사.장담기 .출어(出漁).여행날 따위를 결정하는게 생활화하다시피 돼있다.음력이 양력보다 더 과학적이라면 음력을 기피할 것이 아니라 감춰진 근거들을속속들이 밝혀내 실생활에 이용하는 것도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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