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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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싸움은 먼저 무왕이 건 것으로 돼있다.『삼국사기』 백제본기를보면 무왕 3년(602년)8월 왕이 군사를 내 신라의 아막산성(阿莫山城)을 공격했으나 수천의 신라 기마병 때문에 되돌아왔다고 기술되어 있다.
같은해 10월엔 신라 군사가 백제의 국경을 침범한다.무왕이 노하여 군사 4만으로 응전케 했으나 크게 지고만다.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싸움은 그로부터 수년 간격으로 되풀이된다.선화공주와의 로맨스를 생각하면 이 두 나라간의 싸움은 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여기에 고구려까지 끼어들어 수시로 백제와 신라를 치고 있다.
아리영 눈엔 삼국시대란 참 불가사의한 시대로 비친다.변방에서는 수만의 군사가 처절히 싸우고 있는데 왕도 일대에선 놀랍도록화려한 문화가 줄곧 일구어져 왔다.그 명암(明暗)이 어지러웠다. 무왕 35년(634년)에는 왕흥사(王興寺)가 낙성됐다.금강가닥의 강변에 지어진 이 절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왕은 매번 배를 타고 절 나들이를 했다 한다.또 왕궁 남쪽에 못을 파고 물을 20리 이상이나 끌어들여 그 못속에 섬도 만 들었다.사비하(泗河)강변의 경치 좋은 곳에서는 흥겨운 잔치도 자주 베풀었다. 무왕이 이같이 물을 사랑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과부였다.왕도의 남쪽 못가에서 집을 짓고 살았는데 못속의 용과 정을 통하여 무왕을 낳았다고『삼국유사』는 밝혀 놓았다.
용의 우리 옛말은「미르」다.한편「밀」「미」「미르」는「물」을 뜻했다.고구려 계통의 우리 옛말이다.용과 물은 한 개념이었던 셈이다. 고대엔 물을 다스리는 자가 나라를 다스렸다.물은 권력의 상징이었고 「물속에 사는 용」이란 권력자를 의미했다.무왕은권력자의 서자(庶子)였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은 수많은 청상(靑孀)과부를 만든다.무왕의 어머니도 그런여자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고구려.백제.신라 삼국간의 전쟁은 오랜 고질이었던 탓이다.
그래서인지 과부가 아이 낳는 일도 별로 허물이 되지 않았는가.과부 아들인 가난한 마 장수 서동(薯童)이 훗날 백제 왕위에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권력자였고 서동 자신의 자질이 뛰어났던데 원인이 있기는 하나 당시의 개방 적인 성(性)의식도 한몫 하지 않았을까.
뭇사나이에게 유괴당하고도 선선한 얼굴로 돌아온 신라의 수로부인이며,자기 집 안방에서 외간 남자와 관계를 가진 처용의 아내며….『삼국유사』는 프리 섹스의 진한 빛깔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속에서도 매우 엄한 사랑의 모럴이 있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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