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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 대한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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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해방 직후 안종화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요이 하잇'('레디 고'의 일어) 대신 우리말을 쓴다는 게 '요이 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영어를 쓰기도 쉽지 않고 일본말을 계속 사용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만든 말인데 '땅'소리는 몰라도 '요이'란 준비하라는 일본말이었다. 지금도 일본 감독들은 '요이 하잇'을 외치며 영화를 만든다. 우리는 모두 할리우드식 '레디 고'를 사용하고 있지만 어차피 외국어를 쓸 바에는 영어가 듣기에 낫다.

그러나 우리들의 작업장에서는 그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어가 묻어 다닌다. 나는 특히 영화감독이란 말에 저항을 느낀다. 디렉터. 레알리자퇴르(불어).레지쇼르(노어).도옌(중국어) 등에 비하면 감독이란 어휘는 사뭇 독단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각기 전공이 다른 전문인들을 규합하고 이끌어 자기의 필름 창작을 구체화시키는 사람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경직된 단어가 아닐까.

19세기 말 영화가 탄생하자마자 일본은 재빨리 받아들여 우리보다 20년이나 먼저 구미영화를 즐겼다. 이때 한 모임에서 영화제작을 처음 논의하게 되었는데 한 사람이 자기는 카메라에 익숙하니 촬영을 맡겠다고 했더니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시나리오를, 얼굴 잘 생긴 쪽이 배우를, 돈있는 사람이 제작비를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멤버 중의 한 사람은 맡을 게 없다. 결국 각자가 맡은 일을 잘 이행하는가 감독하는 일을 담당했다. 지금같이 교향악을 지휘하는 컨덕터의 역할 같은 감독의 작업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감독이란 말을 사용했고 우리는 그것을 아직껏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다. 누군가 좋은 우리말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요즘 한국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실속없는 거품에 휘말려 있다. 1000만명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이어지고 시장점유율이 상승하면서 영화인 모두가 풍성해진 것처럼 사람들은 말하고 있지만 사정은 전혀 다르다. 1000만명의 수익금은 대략 600억원. 그 절반을 극장에서 챙기고 나머지 금액에서 광고배급 마케팅비.제작비를 공제하면 영화사의 배분은 훨씬 적어진다. 그래도 그 액수는 가난한 영화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남이 부자가 되는데 속상할 일은 없지만 영화를 성공시키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인 스태프들은 너무 허전한 대우를 받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배우 출연료 3억원의 2%인 600만원을 받고 영화가 끝나는 6개월을 버텨야 한다. 아무리 도제식이고 영화가 좋아 매달렸어도 이것은 생존권의 문제다. 이런 일자리도 계속 있는 것이 아니고 보면 우수한 인재들이 영화계에서 소리없이 자취를 감춘다. 한국영화 제작의 하부 구조는 이렇듯 부실하다. 스태프들의 적정한 임금과 합리적 배분, 적당한 성과금과 고용안정의 장치가 하루속히 마련됐으면 좋겠다.

할리우드도 다를 바 없지만 요즘 영화에는 욕이 난무하고 있다. 때로 욕은 감정 전달이 빠르고 정확한 표현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분별없이 많은 욕을 대사에 섞어버리면 영화의 품위가 떨어진다. 1960년대의 우리 영화에서는 한두마디의 욕을 사용해도 부끄러워했다. 물론 감독 스스로가 비속한 언어를 여과해 사용하는 노력을 했었다. 지금도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는 영화를 통해 자국어를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며칠 전 본 영화에서 부부싸움 장면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나와 '이 씨발, 마 조용히 좀 하소'하고 소리쳤다. 요즘 잘 등장하는 형사들은 욕 빼면 말을 못한다. 관객의 기호를 따라야 하고 직설적이어야 한다지만 이것은 분명히 영화가 문화와 예술행위라는 것을 잠시 잊은 것 같아 답답하다. 한국영화에도 순화된 아름다운 우리말이 사용되기를 바란다.

김수용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