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루슨트 벨 연구소 저력 알고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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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여성 파워'로 무장한 주한 외국기업의 첨단연구소가 있다.

한국 루슨트 테크놀로지스의 벨 연구소가 바로 그곳이다. 이 연구소의 연구원 13명 중 10명이 여성이다.

여성 인력이 흔하지 않은 이공계 연구소에 유독 여성 비율이 높은 이유가 뭘까.

"여자들이 외국 기업 문화에 더 잘 적응하고 영어 실력도 남자 지원자들에 비해 뛰어나기 때문이죠."(박운혜 책임연구원) "우수한 여성 인력들이 외국기업은 한국기업에 비해 남녀 차별이 적을 것으로 기대하고 많이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최정윤 주임 연구원)

*** 연구원 76%가 여성

이 회사 금정원 홍보담당 대리는 "본사 벨 연구소도 여성 비율이 높다"며 "직원 채용 시 남녀 지원자의 비율은 반반이지만 실력대로 뽑다 보면 여성 합격자들이 늘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루슨트 테크놀로지스는 주요 통신사업자 및 기업에 유.무선 통신장비를 공급하는 업체다. 한국에는 1979년 진출했다.

본사 벨 연구소는 1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2001년 3월 한국 현지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 벨 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주로 3세대(3G) 이동통신 기술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여성이 반수가 넘는 조직에서 일하는 데 대해 소혜정 주임연구원은 "남자 직원들의 쓸데없는 농담에 신경 쓰거나 회식 자리에 불려다니지 않는 점이 좋다"며 "저녁 회식은 점심을 함께 먹는 것으로 대체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히려 직원 야유회에 남자 직원들이 핑계를 대고 빠지곤 한다며 웃음을 터트린다.

10명 중 기혼자는 5명으로 절반이다.

김현숙 책임연구원은 "팀 운영방식이 회사와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개인별 프로젝트로 움직이기 때문에 스케줄을 내가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 회사는 출퇴근 시간을 직원이 각자 정할 수 있다.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면 1시간 일찍 퇴근해도 되는 식이다. 안숙경 책임연구원은 "아이들이 아플 때나 집에 일이 있을 때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미혼인 여성 연구원들은 회사에서 1년에 100만원씩 지원하는 자기계발비로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즐기곤 한다.

*** 제품개발 2배나 빨라

이들은 이 같은 시스템이 효율적인 업무 결과를 낳았다고 말한다. 한국 벨 연구소는 제품 개발 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평균 2.3배가량 빠르다. 또 중국 벨 연구소와 협력, 중국 이동통신 사업자인 차이나 유니콤을 위한 선불전화.수신자 부담 서비스 기능도 개발했다.

이들은 "여성 연구원이 많다는 사실보다 다른 IT 연구소들과 맞서는 실력으로 인정받겠다"며 "외국기업 국내 연구.개발(R&D)센터의 역할 모델을 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홍주연 기자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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