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빼앗긴 우리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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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요즈음 장성한 자식을 둔 부모들의 대화에서 나누는 걱정들이 비슷하다. 요즘 애들은 도무지 부모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선거가 다가오면서 가족 간에 갈등과 대립이 더 심해진다고 털어놓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세대갈등은 대중집회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탄핵반대 집회는 젊은이 중심이고, 탄핵찬성은 나이든 사람들 집회다. 주한미군.파병.북한핵 등 나라의 중요한 정치 이슈에 대해 젊은이들과 나이든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달랐던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 '기성세대는 나서지 말라' 하니…

부모는 자식들이 가능하다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져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자신이 가졌던 생각이나 살아온 방식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던 지난 세대들은 배불리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공부방이라도 만들어 주면 되는 줄로 알았다. 뼈빠지게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 지금 정도 먹고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자긍심도 생겼다. '그래, 우리 자식들도 우리 같이만 살면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을 가졌다. 전쟁의 고통을 겪으며 공산주의를 체험한 세대들은 자식들에게만은 절대로 그러한 세상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식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것의 고마움을 알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너희들을 어떻게 길렀는데…"라고 하면 아이들은 하품부터 한다. 심지어는 부모가 무슨 큰 비행이라도 저질렀다는 듯이 "이런 돈 어디서, 어떻게 벌어왔느냐"고 추궁하는 듯한 세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투쟁할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 지금도 못 먹고 못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신 세대 탓 아니냐고….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부모세대들은 나서지도 말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당신들은 곧 사라질 세대니 투표장에 나올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가톨릭에서 신부가 원로 추기경에 대해 "시대를 잘못 읽었다. 시대착오적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정도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나는 기성세대 자신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세대가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정신없이 뛰고 있을 때 아이들의 정신은 다른 사람들이, 다른 세력이 빼앗아 갔다. 다음 세대에게 정신을 넘겨주기보다는 물질을 넘겨주려 했기 때문이다. 부모세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이 이뤄졌는가를 가르치는 데 등한했다. 그러니 젊은이들은 현재의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불과 20여년 전에야 가난을 벗은 나라,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는 북쪽을 두고 있는 나라, 이런 나라라는 것을 정확히 가르쳐야 했다. 지난 세월 고난의 의미와 그를 통한 겸손을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고난의 기억보다는 현재의 겉모습에 취하게 만들었다. 마치 선진국이나 된 양, 강대국이나 된 양 잘못된 오만을 방치했다.

입술로 반공을 외우게 하기보다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을 가르쳐야 했다. 개개인은 자신의 책임하에 사는 것이며, 그러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근면이 소중함을 가르쳐야 했다. 법치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했다. 민족이니, 정의니 아무리 숭고한 이념을 외친다 해도 법치를 벗어나면 끝장이다. 총칼이 독재를 했듯이 다중도 독재를 할 수 있다. 부모세대가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요즘 세대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숫자만 많으면 진실인 것으로 착각한다. 법으로가 아니라 집단의 물리적 힘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다. 개인의 책임은 없고 사회 때문에, 회사 때문에, 부자들 때문에 억울하게 당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 법치 중요성 가정서 가르쳐야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병들지 않아야 한다. 당장의 과제는 헌법의 틀을 지키는 것이다. 어느 당이든 개헌선이 안 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복원될 수 없는 지경으로 한쪽으로 몰려서는 안 된다. 더 바람직한 것은 과반의 근처에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가 지향해온 자유민주주의 정신이 미래로 이어져 갈 수 있도록 젊은이들을 품어야 한다. 그러자면 부모세대들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 젊은 세대와 부모세대는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변화를 받아 들이려는 열린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뒤 사랑으로 가르쳐야 한다. 젊은 세대가 거부한다면 손자손녀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 각자 가정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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