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이 이루는 투명성이 서도호 작품의 한 요소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기에 화면 속에 들어앉은 여러 층의 물감이 이루는 성긴 구조를 볼 줄 안다. 서로 스며들며 침투해 평면이 되면서도 동시에 종이와 종이, 물감과 물감 사이 층과 층을 벌려놓으니까 숨통이 트이는 것인데 그 넉넉함이 서양화에는 없는 동양화의 특징이다. 그런 겹과 호흡의 미학이 내 설치미술작품이나 조각에 배어있다.”
-‘싸이코 빌딩’이란 전시 제목처럼 헤이워드 갤러리 전시작들은 대담하고 놀랍다.
“야심 찬 기획 의도가 마음에 들어 내년 6월에 끝낼 계획이던 ‘떨어진 별(Fallen Star) 1/5’을 1년 앞당겨 완성했을 정도다. 작업을 하면서 초죽음이 됐지만 너무 원했기에 몸은 힘들어도 행복했다. 특히 새빨간 ‘계단 V’는 전시 공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조명만으로도 관람객에게 새로운 시각 체험을 줄 수 있었다.”
-한옥과 양옥이 충돌해 물건 수천 개가 쏟아져 들어간 모습은 지진이나 참사를 연상시키던데.
“건물을 대각선으로 자른 것은 숨지 않고 다 드러내 보여주겠다는 절단의 몸짓이다. 한국을 떠나 회오리바람에 쓸려가듯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떨어진 나의 운명이 담겨 있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는 떠도는 인생의 상황이랄까. 나는 연기설(緣起說)을 믿는다. 관람객이 내 머릿속 뇌수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면 했다. 집을 의인화해 다른 두 문화의 충돌을 나타낸 것인데 여기서 쏟아진 물건은 낯선 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알몸이 되는 변이의 상징이다.”
-집을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시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성북동에 일찌기 전통 건축술에 맞춰 한옥을 지은 부모 덕일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대문을 나설 때마다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느낌, 격리되는 경험을 했다. ‘집속의 집’, 그 경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가는 세상과 문명을 이해하는 나와 내 작품의 영원한 주제다.”
정재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