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만난 작가 서도호 “내 머릿속 뇌수를 들여다보는 기분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작업 구상차 잠시 서울에 온 서도호(사진)씨를 지난주 만났다. 그는 마침 경복궁 자경전 구경을 다녀온 참이었다. 한국 고건축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옥, 한복, 한국화를 관통하는 맥이 짚인다”며 “단순한 표면이 아니라 여러 겹이 켜켜이 쌓여서 일궈내는 투명성”이 공통점이라고 했다.

-겹이 이루는 투명성이 서도호 작품의 한 요소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했기에 화면 속에 들어앉은 여러 층의 물감이 이루는 성긴 구조를 볼 줄 안다. 서로 스며들며 침투해 평면이 되면서도 동시에 종이와 종이, 물감과 물감 사이 층과 층을 벌려놓으니까 숨통이 트이는 것인데 그 넉넉함이 서양화에는 없는 동양화의 특징이다. 그런 겹과 호흡의 미학이 내 설치미술작품이나 조각에 배어있다.”

-‘싸이코 빌딩’이란 전시 제목처럼 헤이워드 갤러리 전시작들은 대담하고 놀랍다.

“야심 찬 기획 의도가 마음에 들어 내년 6월에 끝낼 계획이던 ‘떨어진 별(Fallen Star) 1/5’을 1년 앞당겨 완성했을 정도다. 작업을 하면서 초죽음이 됐지만 너무 원했기에 몸은 힘들어도 행복했다. 특히 새빨간 ‘계단 V’는 전시 공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조명만으로도 관람객에게 새로운 시각 체험을 줄 수 있었다.”

-한옥과 양옥이 충돌해 물건 수천 개가 쏟아져 들어간 모습은 지진이나 참사를 연상시키던데.

“건물을 대각선으로 자른 것은 숨지 않고 다 드러내 보여주겠다는 절단의 몸짓이다. 한국을 떠나 회오리바람에 쓸려가듯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떨어진 나의 운명이 담겨 있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는 떠도는 인생의 상황이랄까. 나는 연기설(緣起說)을 믿는다. 관람객이 내 머릿속 뇌수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면 했다. 집을 의인화해 다른 두 문화의 충돌을 나타낸 것인데 여기서 쏟아진 물건은 낯선 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알몸이 되는 변이의 상징이다.”

-집을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시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성북동에 일찌기 전통 건축술에 맞춰 한옥을 지은 부모 덕일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대문을 나설 때마다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느낌, 격리되는 경험을 했다. ‘집속의 집’, 그 경계를 어디까지 정할 것인가는 세상과 문명을 이해하는 나와 내 작품의 영원한 주제다.”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