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라, 그리고 손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3면

신개념 MP3 ‘아이팟’으로 기사회생한 미국 애플의 본사엔 기획과 판매 조직만 있다. 부품 생산과 조립·판매는 세계 각지의 전문 업체들 몫이다. 미국의 신흥 가전업체 비지오도 비슷하다. 기획·디자인·콜센터는 본사가 챙기지만 생산기지는 대만에 있고, 유통망은 코스트코·샘스클럽 같은 미국의 창고형 매장이다. 최고의 아웃소싱 조합 덕분에 2006년 LCD TV를 내놓은 지 2년 만에 북미 시장에서 삼성·소니와 함께 당당히 3강을 이뤘다. 이에 비해 일본의 주력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자국의 협력업체와 수직계열화를 고집하는 바람에 1990년대 중반 이후 컴퓨터·휴대전화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었다.

연구개발(R&D)과 제조·마케팅 같은 기업의 핵심 기능을 쪼개 지구촌 최적지에 맡기는 ‘네트워크형 비즈니스모델’(GNB)이 강조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일본처럼 수직계열화에 매달려온 한국 대기업들도 GNB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면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이 연구소가 18일 내놓은 보고서 ‘GNB 모델의 확산’을 요약한 것.

GNB의 확산은 한국 기업에 위협이자 기회다. 위협 요인은 세 가지다. 우선 브랜드·기술력에서 앞선 글로벌 기업들이 신흥 제조 전문업체와 손잡고 가격경쟁력을 키운다. 둘째로 자본·설비가 부족해도 제조·부품 전문업체와 연합할 수 있게 되자 예상치 못한 새 경쟁자가 속속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부품·소재업체의 독과점화가 심화돼 중소 부품업체가 설 자리를 잃고 완제품 업체의 협상력도 떨어진다.

물론 GNB를 통해 기회도 생긴다. 기술과 사업 기반이 부족해도 신규 사업이 가능해진다. 또 다수 기업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기 때문에 제품 개발 속도가 빠르고 수요변동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업종별로 GNB 확산 속도를 보면 의류가 가장 빠르고 제약·IT·자동차 순이다. 이에 비해 부품과 모듈의 원거리 수송이 어려운 조선, 철강·석유화학처럼 제조 공정이 연속 과정인 소재산업은 외부 위탁이 힘들다. 

표재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