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기자간담회 발언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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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정권의 역사바로세우기와 관련,이수성(李壽成)총리가 두 전직대통령에 국한된 최소한의 단죄와 점진적 추진을 요구하는 강한 보수(保守)의 목소리를 내 주목받고 있다.
李총리는 29일 가진 송년 오찬기자간담회에서 역사바로세우기와관련,『두 전직대통령외의 부화뇌동자 단죄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질문을 받았다.대답대신 李총리는 느닷없이 총리실의 한 고위비서관을 지적하며 『당신 과거 친구들에게 술 얻어먹고 뭐 받은적 없냐』고 물었고 비서관은 얼떨결에 『네(받았다)』라고 대답했다.
李총리는 곧이어 『과거 잘못을 지금 전부 캐기 시작하면 한 사람도 남아나는 사람이 없다는 게 개인적 의견』이라고 말문을 열었다.그는 또 『이런식이 되면 자칫 4,000만 부패캐기작전이 될 수도 있다』며 『정의는 최대다수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이어 『상징적으로 드러난 대표적 인물은 단죄할 수밖에 없으나 소소하게 휩쓸린 사람들을 캐기 시작하면 아무도 당당한 사람이 없다』고 답변을 정리했다.사실상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두전직대통령등으로 극소화해 과거처벌을 끝 내야 한다는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그는 또 『이제 국민이 한단계를 넘어서는 용서가 필요하다』며형사처벌과 관련해서도 『가능하면 사람만은 편안하게 해주는 「관대성(寬大性)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형사법 전공학자의 소신도 드러냈다.
李총리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는 철학자 칸트의 얘기를 거론한 뒤 『하늘이 무너지면 정의가 아무 소용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도 했다.그는 또 『과거 인구 17만명의 뉘른베르크에서 조그만 잘못도 다 사형을 시켜 5년새 3 만5,000여명이 사형을 당했으나 시민들의 마음이 하나도 편하지 않았다』고 설명한 뒤 『역사바로세우기는 올바른 것이나 급격한 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李총리의 이날 발언은 「철저한 역사바로세우기」를 주장하는 여권 일부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또 이날 발언이 오전 청와대주례보고 직후 나온 것이어서 청와대와의 교감여부도 관심을 끌었으나 그는『청와대에서는 큰 문제 몇가지만말씀드렸다』고만 대답했다.그는 어쨌든 잇따른 과거청산에도 불구하고 민심의 혼돈이 가시지 않는 현상황에 대해 자신의 처방을 명확히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李총리는 이날 역사바로세우기의 향후방안으로 「국민적 인식의 확산」「조화」를 제시했다.그는『역사바로세우기는 특정정부의 구호가 아니라 국민들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금은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잘못을 잡아나가는 조화가 가장 필요한 시점』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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