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의 ‘감동’ 세무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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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 서초구는 최근 다른 구청에선 생각지도 못한 과감한 방법으로 밀린 세금 23억원을 받아냈다. 고유가와 경기침체로 자금줄이 말라 힘들어 하던 전자부품 업체 A사에 은행 대출을 알선해 주고, 그 돈으로 회사도 살리고 밀린 세금도 받아낸 것이다.

A사는 2000년 서초구에 연구소 건물을 사면서 벤처기업으로 조세 감면을 받아 취득세와 등록세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서초구는 2004년 A사가 법에서 정한 기한(5년)보다 짧은 3년 만에 건물을 팔았다는 이유로 세금을 부과했다. A사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해 3월 서초구가 최종 승소했다.

일반적으로 구청 세무과에선 이런 경우 공장이나 사무실 같은 부동산을 압류한 뒤 경매에 넘기는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랬다면 A사는 경북 구미에서 운영하던 공장을 잃어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해지고, 서초구도 세금의 전액이 아닌 일부만 건질 것으로 예상됐다. 조용환 세무1과장은 “A사와 구청·은행이 긴밀히 협의해 구청은 A사의 공장에 걸었던 압류를 풀어주고, 은행은 이 공장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고, A사는 세금을 납부하는 식으로 처리했다”며 “전국에서 이런 경우는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A사가 받은 은행 대출의 금리는 연 8.5% 수준으로 세금 체납에 따른 가산금(연 14.4%)보다 훨씬 유리했다. A사로선 1년에 1억4000만원이나 비용을 아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조 과장은 “가장 큰 성과는 A사가 세금 체납업체라는 ‘딱지’를 떼고 각종 인허가나 입찰에서 아무런 불이익 없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서초구는 이 사례 외에도 세무행정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바쁜 시민들이 24시간 세금을 납부할 수 있게 하는 ‘가상계좌 수납 서비스’를 실시하는가 하면, 기업들을 상대로 ‘기업지원 세제 설명회’나 세무행정 e-메일 상담 코너 등을 운영하고 있다.

조 과장은 “세금은 반드시 받아야 하지만 납세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앞으로도 납세자의 사정에 꼭 맞는 ‘맞춤형 징수기법’을 적극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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