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덥다고 아이스크림 잘 나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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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섭씨 30도 이상 불볕더위가 계속되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중 어느 것이 더 잘 팔릴까. 정답은 음료수다. 빙과업계에 따르면 섭씨 15~25도에서는 떠먹는 고급 아이스크림, 26~30도에서는 컵 또는 콘 형태의 아이스크림이 잘 팔린다. 하지만 30도를 넘어서면 아이스크림 판매량은 줄고 대신 음료가 잘나간다. 날씨와 기온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기 때문에 업계는 날씨 예측에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이런 사정은 빙과업계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서울대와 삼성지구환경연구소가 발표한 ‘기상의 사회경제적 영향 및 상관관계’(2003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날씨에 영향을 받는 산업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2%에 이른다. 날씨에 따라 좌우되는 사회경제적 가치를 돈으로 따지면 연 3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날씨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과 날씨 정보의 중요성을 알아본다.

◇개인·사회에 끼치는 영향=“학생들은 습기가 많은 날에 평소보다 다섯 배 이상 학교에서 벌을 많이 선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주요 동기』에서 지적한 내용이다.

날씨는 개인의 행복지수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에버트 반 블리트는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은 춥거나 더울수록 행복지수가 높고,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은 섭씨 20도 부근의 온화한 날씨일 때 행복감을 더 느낀다”고 밝혔다.

교통사고율·자살률도 달라진다. 1일 평균 교통사고 사망자를 분석한 한 조사에 따르면 비 또는 눈이 온 날 사이에 있는 맑은 날은 1.5명, 비가 온 날 1.49명, 맑은 날 1.44명, 비 온 다음날 1.43명, 비 오기 하루 전 1.40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화창한 봄 날씨에 자살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경제 어떻게 좌우하나=농수산·식음료·에너지·건설·보험·의류·레저·관광·물류업 등은 날씨의 직·간접 영향을 받는다. 특히 의류업체는 온도, 방직공장은 습도, 건설업체는 바람의 세기에 민감하다.

날씨에 따라 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예컨대 황사가 심하면 병원·약국·세제업체·선글라스업체·통신판매업체는 호황을 누린다. 반면 항공사·농가 또는 반도체 등 정밀기계 생산업체는 피해를 본다.

기온에 따라 유통업체의 매출액도 달라진다. 편의점업체인 GS25가 기온(1~6월)과 매출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하루평균 기온이 1도 오르면 각 매장의 고객이 하루 9명 늘었다고 한다.

◇날씨가 삶을 지배하는 이유=사람의 사고·심리·감각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로라 리는 그의 저서 『세계사 캐스터』에서 “흐린 하늘은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에 영향을 끼친다. 또 비는 사람들의 기분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일부 과학자는 날씨에 따른 기압의 주파수·전자기·이온 등의 변동이 심장박동·체온·혈압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현 과학 수준이 날씨를 100%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한 인류의 삶은 날씨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재 기상청의 일기예보 적중률은 87%, 일반인이 느끼는 체감 적중률은 60%대다. 같은 기후대에 속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행동양식은 날씨 변화에도 적용돼 고스란히 그들의 삶을 지배한다.

◇날씨 정보 어떻게 활용하나=기상정보업체인 케이웨더 관계자는 “날씨는 수요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라며 “기업이 날씨 정보를 미리 알아두면 적절한 수요 예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기상기구(WMO) 자료에 따르면 날씨 정보를 활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투자액 대비 10배 이상 효과가 있다. 실제로 날씨를 기업 활동에 접목하는 ‘날씨 경영’ ‘날씨 마케팅’에 주목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편의점업체인 훼미리마트의 경우 2001년부터 김밥·샌드위치 등 날씨에 민감한 상품의 수요 예측과 재고관리를 위한 날씨정보시스템을 도입해 매출이 30%가량 늘었다.

◇생각해 볼 문제=기업이 날씨 정보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맞춤형 일기예보’가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정 날짜와 장소를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일기예보가 날씨 마케팅의 활용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날씨 정보=공짜’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일기예보는 기상청이 사실상 전담하는데 날씨 정보를 재가공하거나 맞춤형 일기예보를 제공하는 민간 기상업체가 기상청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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