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사정說 잔뜩 움츠린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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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세밑 정치권에 「익명의 대화」가 유행이다.정치인 10명선 사정설이 대두된 뒤의 현상이다.
의원들은 자신이 축재.뇌물수수 혐의로 내사중이라는 말이 돌면허겁지겁 기자실로 달려온다.
그러나 해명의 전제는 자신의 이름을 박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풍문을 부인했다는 보도 자체가 커다란 타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해명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익명으로 만나는이상한 정치가 유행이다.예외도 있다.신한국당(가칭)최형우(崔炯佑)의원은 22일 한 토론에서 정치권 사정에 대 한 전반적 소감을 묻자 『사정은 성역이 있으면 안된다.나에게도 어떤 문제가있으면 과감히 들이대야 할 것이다』고 못박았다.이런 「소신파」는 그러나 드물다.
중부권 출신의 신한국당 민주계 A의원은 22,23일 주요 당직자 방에 잇따라 전화를 걸었다.
『내가 사정 당사자라는 소문이 있는데 이 늙은이가 무슨 죄가있나.당신이 해명좀 하라』는 전화였다.당직자들도 답답해 했다.
그렇다고 보도진을 모아놓고 『아무개는 아니다』고 공표할수 없기 때문이다.사업을 했던 여당의 소장파 B의원은 『내 재산 관계는 이미 지난번 공개때 검증 받았다』며 지역구 경합자를 의심했다. 야당은 더 심각하다.야당가는 사정의 최종 목표가 자신들이라고 믿고 있다.야당의원중 대상자로 지목되는 의원들이 대부분양김(兩金)총재의 측근이거나 주요 당직을 맡고 있는 점도 이런확신을 더하고 있다.
사정설에 휘말린 야당의원들은 그래서 하나같이 『나를 사정 대상자라고 흘리는 것은 야당탄압 음모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권의 심리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도부에 속하는 C의원은 『총재 따라 30년 정치를 해오며 숱한 소문에 휩싸였지만 이렇게 건재하다』고 일축했다.여권 출신인 또다른 야당 중진 D의원은 『문제가 있다면 여당 탈당과정에서 드러났을 것』이라며 일소에 부치다.
외부 영입파인 또다른 중진 E의원은 『당세 확장을 못하게 나를 묶어놓으려는 술책』으로 해석했다.
여야의원들은 그러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어찌됐든 거명 자체가 타격이기 때문이다.
사정설은 대상자만 괴롭히지 않는다.여야 의원 모두 『주머니가말랐다』고 하소연한다.
대부분 의원은 정기국회 폐회와 함께 지역구에 박혀 있거나 초저녁에 귀가한다.연말을 맞아 하루 저녁에도 2~3군데 모임을 주재하던 것은 옛날 얘기다.의원들의 관심사는 사정 분위기가 언제나 풀릴까 하는 점이다.
서로 만나면 『내년 선거 때는 풀리느냐』고 묻는다.그러나 이런 말들은 확신없는 덕담처럼 들린다.
최소한 『올겨울은 춥고 힘든 겨울이 될 것』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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