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우리 두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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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문도채(1928~2003) '우리 두 사람' 전문

무던히 오래 같이 살아왔으면서도

당신의 어디가 좋은지 몰랐는데

첫째에게 하나 둘을 가르치고

둘째 셋째…

여섯 아이 말고 손주까지 길러 오면서도

할 말이 없었는데

회갑잔치를 맞을

덩실한 집 큰방에 남은 우리 두 사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여보, 가까이 가까이 좀 와요

흰머리를 뽑는다.



김밥 한 주먹 들고 상사 초등학교에 가다.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 산골 분지에 새워진 이 초등학교를 분지 위의 언덕에서 내려다 보다. 서툴게 그린 분홍색의 동그라미 하나가 연둣빛의 대지 한가운데 툭 던져져 있다. 만개한 벚꽃나무들이 학교를 한바퀴 빙 둘러 서 있는 탓이다. 늙은 벚꽃나무 아래 돌벤치에 앉아 깁밥을 먹다. 꽃 이파리들이 하늘로 땅으로 바람 속으로 날아오르다. 그중 하나 손에 든 김밥 위로 툭 떨어지다. 잠시 망설이다 꽃잎과 함께 한 덩이 김밥을 삼키다. 나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봄을 맞이했다는 것. 늙은 벚꽃나무를 가만히 껴안아 보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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