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악재만 쌓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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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한국 경제가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일부 경제지표는 1997년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 유가의 급등 여파로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이달에 5%대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국내외 경제상황이 불확실해지면서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바람에 올 1분기 기계류 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 감소했다.

내수 부진으로 지난해 자영업자의 소득이 3년 만에 가장 적게 늘었으며 외채는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 경제성장률은 정부가 당초 목표한 6%는커녕 5% 달성도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출범 초인 3월에 내놓았던 경제지표 전망치를 3개월여 만에 대폭 하향 조정할 계획이다.

◇경제지표 곳곳 빨간불=기계류 투자는 지난해 4분기 2.8% 증가했으나 올 1분기에 2.8% 감소로 돌아섰다. 건설경기 부진의 여파로 건설투자도 1분기에 1.4% 줄었다. 투자 부진은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고 고용사정을 악화시키고 있다.

3월 말 현재 외채는 4124억 달러로 3개월 동안 303억 달러 늘었다. 이 추세라면 9년 만에 대외채권보다 대외채무가 많은 순채무국으로 돌아설 전망이다. 특히 앞으로 1년 안에 갚아야 할 외채가 2155억 달러로 외환보유액의 82%에 달해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경상수지 적자 속에 외채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자영업자의 총소득은 83조원으로 전년에 비해 0.9% 느는 데 그쳤다. 3년 만에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송태정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는 원가 부담이 높아지고 소비가 부진해 자영업자의 소득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사가 잘 안되자 자영업자 수도 604만 명으로 전년보다 8만여 명 줄었다.

◇경제전망치 대폭 낮출 듯=재정부 관계자는 “유가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오르면서 경제 여건이 크게 달라졌다”며 “경제지표 전망치를 현실에 맞춰 수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3월에 6% 안팎으로 제시했던 성장률 전망치는 4~5%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가토 다카토시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는 “한국의 올 성장률이 4%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당초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3% 안팎으로 예상했으나 5월에 4.9%를 기록했고 이달에는 5%대로 치솟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내수가 급격히 위축된 가운데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를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자리 목표치는 35만 개 안팎에서 20만 개 안팎으로 낮춰질 전망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5월에 새 일자리는 18만1000개 늘었다”며 “당분간 신규 고용이 20만 명 안팎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경상수지 적자도 유가가 더 오르면 당초 예상치(70억 달러)보다 확대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경제운용 방식 확 바꿔야=사실상 ‘3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경기가 둔화되고 물가가 치솟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계경제 흐름과 동떨어지게 ‘성장 우선’ 정책에 전념하는 바람에 더 어려워졌다. 가토 IMF 부총재는 “한국 정부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증을 버리고 우선 물가와 국제수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투자가 위축되면 올 성장은 물론 잠재성장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감세와 규제 완화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렬·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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