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95>2.6.27지방선거와 그 파장-여당참패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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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6.27지방선거는 우리 정치사상 사실상 처음있는 본격적인 지자제 선거였다.
우리의 민주화 과정을 한걸음 나아가게 하는 선거였다.우리 선거사상 처음으로 금권과 관권이 동원되지 않은 선거라고 야당조차시인한 선거였다.특히 선거관계법의 개정으로 「말은 풀고 돈은 묶은」선거를 처음으로 경험했으며,자원봉사제도도 처음으로 도입했다. 6.27선거는 이같은 정치사적 의미 외에도 결과 역시 충격적이었다.여소야대의 결과가 정치권을 강타했다.당시 집권 민자당은 크게 패했다.반면 민주당과 자민련은 건재를 과시하며 약진했다.광역단체장 선거결과는 민자 5,민주 4,자민련 4,무소속 2로 나타났다.
민자당이 얻은 결과는 참담했다.민자당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아예 제1당의 자리도 내줘야 했다.230개의 기초단체장 가운데민자당은 71석을 건졌을 뿐이다.민주당이 84석으로 1위를 차지했고 자민련은 23,무소속은 52개 시.군.구 에서 승리했다. 지방의회도 대부분 야당이 장악했다.민자당은 부산.강원.경북.경남 등 4개 시.도에서만 다수당이 됐다.반면 민주당은 서울.인천.광주.경기.전북.전남 등 6개 시.도에서 최다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됐다.
자민련은 대전.충남의 다수당이 됐다.대구.제주는 의회 역시 무소속이 다수를 차지했고 충북은 민자.민주.무소속이 동수를 이뤘다.875명의 광역의원중 민주당 355명,민자당 286명,자민련 83명,무소속 151명이 당선됐다.
이같은 선거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자명했다.바로 호남 대비호남구도가 깨졌음을 웅변했다.지난 13,14대 대통령선거에서여당후보가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호남 대 비호남구도다.또한 민심이 정부를 떠난 결과로도 받아들 여졌다.
집권 민자당은 이같은 두가지의 위기,호남 대 비호남구도의 붕괴와 민심의 이반에 따른 대책이 필요해졌다.이 두가지 어려움을한꺼번에 해결하는 방안으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정치권을 개혁과 반개혁의 구도로 다시 짜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金대통령은 구기득권층 감싸안기를 포기했다.그래봐야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그는 여당의 간판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과거청산작업을 시작했다.노태우(盧泰愚)씨가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이 드러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하지만 이를 계기로 5.18특별법 제정에까지 나선 것으로 미뤄볼 때 이같은 과거청산에 대한 구상은 지방선거후부터 金대통령의 머릿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정확할 것같다.
물론 이같은 노력이 얼마나 주효할지는 미지수다.지방선거 때도이미 선거결과가 지역분할구도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은 선거전부터 폭넓게 확산돼 있었다.그런 예상은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이번 총선에서도 이같은 양상이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3金의 비연고 지역에서는 아직 변수가 많다는 주장도 있다.광역단체장선거에서 서울은 민주당이 이기고 인천.경기.경북에서 민자당이 승리를 거뒀으며 의외로 강원도를 자민련이 차지한 것에 대해선 여러가지 주장이 있지만 결국 후보가 당락을갈랐다는 분석이 다수다.이같은 측면과 총선승패도 이들 지역에서판가름날 것임을 감안해 보면 아직 변화의 여지는 많다.지역감정이 맹위를 떨쳤고 그 사이에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정한 판단이 있었다는 점에서 95년의 6.27 지방선거는 한국정치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하겠다.
김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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