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급성장한 회사 뒤 봐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러시아 석유 거래 황제의 뒤엔 푸틴이 있었다.”

설립 5년 만에 세계 4위의 석유 거래 업체로 급성장한 러시아 회사 ‘군보르’. 이 회사가 초고속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최근 대통령에서 총리로 자리를 옮겨 앉은 블라디미르 푸틴(56·사진·左)이 있었다는 정경 유착설이 제기됐다. 군보르의 공동 창업자인 겐나디 팀첸코(55·右)가 푸틴의 오랜 친구여서 군보르가 급성장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1일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팀첸코를 언론으로는 처음 인터뷰한 기사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팀첸코는 2000년 푸틴이 막 크렘린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무명 인사였다. 하지만 크렘린이 러시아 석유회사들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해 가면서 그가 설립한 군보르는 석유 거래 관련 각종 계약을 따내며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군보르가 올해 2월 수출한 원유의 양은 2002년 같은 기간에 비해 16배나 늘었다. 올해 매출액은 무려 700억 달러(약 72조원)로 예상된다. 스위스의 ‘글렌코어’, 네덜란드·스위스 합작기업 ‘비톨’, 네덜란드 ‘트라피휘라 베헤이르’에 이어 세계 4위 석유 거래 업체로 부상한 것이다. 25억 달러의 부를 축적한 팀첸코는 올해 처음으로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갑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팀첸코는 WSJ와 인터뷰에서 “사업에 성공한 것은 석유 공급 시기를 잘 맞춘 물류 기술의 결과”라며 푸틴과의 밀착설을 일축했다. 그는 “1990년 초반부터 푸틴을 알고 지냈지만 친구 사이는 아니다”며 “나는 사업가이지 정치인이 아니다”고 강변했다. 그는 또 “바빠서 푸틴을 만날 시간도 없고 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WSJ와 인터뷰를 한 지 5일 만에 푸틴이 참석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바라-네바’라는 유도클럽이 주최한 연회였다. 팀첸코는 이 클럽의 창립자 가운데 한 명이고 유도광인 푸틴은 클럽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80년대 말부터 사업에 손을 댄 팀첸코는 90년대 초반 푸틴이 KGB를 그만두고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정부의 대외관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을 당시 시 정부의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에서 많은 수출 쿼터를 할당받는 등 특혜를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팀첸코는 2003년 스위스로 근거지를 옮겨 스웨덴 출신의 토비요른 토른크비스트와 군보르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과 토른크비스트가 군보르의 지분 80%를 소유하고 있고 나머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인이 갖고 있다면서도 이 지인의 이름을 밝히기는 거부했다. 언론들은 베일에 가려진 이 지분의 소유자가 푸틴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철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