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우편 민영화로 DHL 살 돈 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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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매출액 101조6000억원에 순익 5조1200억원. 세계적인 초대형 물류회사 도이체 포스트의 지난해 경영 성적표다. 1995년 민영화 이전만 해도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이 회사는 민영화를 통해 완전히 체질을 바꿨다.

도이체 포스트의 발터 마슈케(56· 구조조정 담당·사진) 부사장을 만나 민영화 성공 스토리를 들어봤다. 마슈케 부사장은 민영화 당시 구조조정을 주도한 도이체 포스트 민영화의 산증인이다.

마슈케 부사장은 “독일 우정사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민영화가 유일한 해답이었다”며 “세계급행우편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DHL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민영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독일 정부는 왜 도이체 포스트의 민영화를 추진했나.

“민영화는 시장 개방과 맞물려 생각해야 한다. 독일은 민영화하기 수 년 전에 독점이던 우정 시장을 개방했다. 이로 인해 도이체 포스트는 세계적인 우편 회사와 경쟁하게 됐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민영화가 유일한 해답이었다. 국영기업으로서의 도이체 포스트는 경쟁력이 없었다. 시장 개방과 민영화 과정은 도이체 포스트에 엄청난 어려움을 의미했다. 당시 도이체 포스트는 만성 적자에 시달렸으며 적자를 정보통신 부문이 해결해 주는 구조였다. 비효율적인 구조를 효율적으로 바꿔야 했다. 수십 년간 안 고쳐지던 적자와 비효율이 민영화 후 몇 년 사이에 개선됐다. 비용 절감과 품질 향상도 가능해졌다. 민영화 이전에는 편지 한 통을 전달하는데 20명의 손을 거쳤다. 시간도 3∼4일이 걸렸다. 현재는 거의 100% 자동화됐다. 배달도 당일 가능해졌다.”

-한국도 우정사업 민영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가장 큰 우려는 비용이 많이 드는 농촌이나 산간벽지에는 우편물 배달이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 각국에서 우정업무 민영화를 앞두고 이런 걱정을 한다. 우정사업이 민영화되면 이익을 위해 돈 안 되는 농촌, 산간벽지 배달은 소홀히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민영화 후에도 편지 배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독일의 경우 기업 고객이 전체 우편물 위탁량의 90%를 차지한다. 한국도 비슷할 것이다. 기업들은 도시뿐 아니라 농촌과 벽지에도 우편물을 보내야 한다. 주요 고객인 기업의 우편물 배달을 위해서라도 시골의 우편망에 이상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민영화 이전 산간벽지는 주 5일 배달됐지만 민영화 이후에는 주 6일 배달된다. 오히려 서비스가 나아진 것이다.”

-민영화되면 우편 요금이 크게 오른다는 지적도 있다.

“독일 우편 요금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떨어졌다. 매출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보통우편의 경우(20g 미만 국내우편물) 민영화 이후 6년간 가격 인상이 되지 않았다. 2002년에는 56센트이던 가격을 55센트로 낮췄다. 지난 10년간 물가가 오른 것에 비하면 되레 15% 인하된 셈이다. 다른 나라의 주요 경쟁사들은 40% 인상됐다. 민영화가 가격 인상을 가져온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대규모 해고 사태가 있을 것이란 우려가 있다. 직원들의 반발은 없었나.

“일방적인 대규모 해고는 없었다. 우리는 노조와 충분한 상의를 거쳐 직원의 규모를 줄여나갔다. 퇴직한 직원의 자리를 채우지 않는 방식으로였다. 명예퇴직을 유도하기도 했다. 15년간 매년 직원 1만 명씩을 줄여 총 14만 명을 줄였다. 1990년에 국내에 약 38만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약 23만~24만 명으로 줄었다. 노동강도가 훨씬 커지거나 하지도 않았다. 국가기관으로서 비효율을 민간으로 전환하며 보완하면서 가능했다.”

-지분 매각은 어떻게 했나.

“주식을 매각할 때는 패키지로 했다. 한 번에 다 판 게 아니라 처음에는 약 20%, 그 다음에는 10%씩만 매각하는 식이었다. 현재 국가가 소유한 지분은 31%다.”

-DHL은 어떻게 인수했나.

“1990년대에 DHL 주식 25%를 샀다. 이후 2002년에 100% 지분을 사들였다. DHL은 전 세계 특급우편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초대형 물류회사다. DHL을 사들인 것은 민영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럴 만한 돈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독일)=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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