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물가잡기 칼 뽑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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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라면 회사들에 이어 이동통신업체·대형병원·정유업체까지 불공정거래 조사에 나섰다. 사설학원들에 대해서도 학원비를 담합해 인상했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모두 생활 물가와 관련이 큰 업종이다. 공정위는 11일 이들 업체가 영업활동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서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에는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 3대 이동통신사, 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아산병원 등 45개 대형 병원,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S-Oil 등 4대 정유업체가 포함됐다.

조사 내용도 광범위하다. 지난달 말 공정위의 서면 조사를 받았다는 이동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특정 영업 부문에 한정되지 않고 요금 책정이나 마케팅 실태, 대리점과의 거래 관계 등 전 부문에 대해 조사가 이뤄졌다”고 말혔다. 공정위는 이를 통해 가격 담합 여부는 물론 대리점과의 불공정 계약 여부, 소비자에게 특정 서비스 이용을 강요하고 있는지 등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병원에 대해서는 환자들에게 일반 진료보다 비싼 특진을 강요했는지, 제약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정유업체의 경우 주유소에 자사 제품만 판매할 것을 강요하거나 최근 국제 유가 인상을 틈타 가격을 부당하게 올렸는지를 조사한다. 일부 지역 주유소들의 가격 담합 여부도 포함된다. 공정위는 서면 조사에서 불공정 거래 혐의가 드러날 경우 곧바로 현장 조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달 말 “석유와 이동전화 서비스, 사교육, 자동차, 의료 등 5개 업종을 중점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백 위원장은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 상승으로 대내외적 여건이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부당 이익을 거두는 기업은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가 물가 잡기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면서도 담합이 줄고 유통 구조가 개선되면 가격 인하 효과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서면 조사의 경우 실효성은 다소 떨어질 수 있지만 업체들이 스스로 불법을 바로잡는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MB 물가지수’ 발표 등 정부의 각종 물가 대책이 별 성과가 없자 결국 ‘경제 검찰’인 공정위가 칼을 빼든 게 아니냐며 긴장하고 있다. 특히 시점이 묘하다는 지적이다. 식음료 업체들은 올 초 한 차례 가격을 인상한 후 밀가루 가격 2차 인상분이 본격 반영되는 이달부터 추가 인상을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조사가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가격 인상을 고려하던 기업들도 일단 신중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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