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스트레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스트레스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록펠러 대학교 브루스 맥웬의 주장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주위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시력과 청력을 약간 향상시키며 근육을 조금 더 잘 움직이게 만든다. 우리가 복잡한 도로에서 사고를 내지 않고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은 이 호르몬 덕분이다.

맥웬은 말한다. “스트레스는 신체를 보호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주변 환경을 경계하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반면 즐겁고 태평한 사람은 함정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스트레스를 더 잘 받는 사람이 생존경쟁에 더 잘 대처해서 우리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고 추정한다. 초기 인류 시대에 불안하고 의심이 많고 삶과 타인에 관해 최악을 가정하는 사람이 자연선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원시인들은 생존환경이 혹독해서 그랬다 하더라도 평균수명이 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여전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트레스는 기본적으로 불안과 공포에 대한 인체의 반응인데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가 늘어난 주요 원인은 나쁜 소식을 과장하는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 뉴스라고 한다.

미국 뉴욕대학의 스트레스 연구자 조셉 르두는 이를 ‘과장된 헤드라인에 의한 불안’이라고 명명했다. “옛날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것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모든 사람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과 미래의 위협요소를 알고 있다. 걱정할 필요가 있을 듯한 사항의 목록이 엄청나게 길어진 것이다.”

오늘날 광우병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그 원인은 언론매체들이 톱뉴스로 광우병 공포를 조장한 데 있지 않은가. 어제 서울 광화문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도 광우병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촉발된 것이 아닌가.

문제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인체의 면역력을 억압해 질병에 더 잘 걸리게 하고, 성호르몬의 생산을 저해한다. 사실 국민건강에는 광우병 그 자체보다 광우병 스트레스가 더 해로울지 모른다. 인간광우병의 발병 확률이 극히 낮다는 과학적 상식과,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온갖 현대적 질병의 원인으로 꼽는 요즘 이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조현욱 논설위원

한·영 대역 [Fountain] Surviving st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