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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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저녁 식사하러 가십시다.』 우변호사는 아리영의 머리를 쓸어넘겨주며 말했다.
『생선요리 좋아하십니까?』 긴 키스로 가슴이 메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분위기 좋은 생선요릿집이 있습니다.북구(北歐)의 바다맛을 보러 가시지요.두꺼운 재킷이나 코트를 걸쳐야 할 겁니다.저녁녘엔 기온이 13도까지 내려가니까요.』 옷 갈아입고 로비로 내려오라며 우변호사는 방을 나갔다.
하얀 드레스에 흑백의 진주알을 섞어 꿴 긴 목걸이를 걸치고 빨간 코트를 입었다.떠나오기 전 아리영은 덴마크에 관한 책을 찾아 지리.역사.기온.명산에 관한 일들을 훑어봤다.7,8월의 평균 최저기온이 13.3도라는 것을 그 책에서 읽 고 코트를 준비해 온 것이다.
『정말 아름다워요!』 로비 의자에 앉아 있던 우변호사가 일어서서 아리영을 맞았다.사랑하는 남자의 찬탄을 받는 것 이상 기쁜 일은 없다.아리영은 비로소 자기 모습에 감사하는 경건함을 느꼈다. 호텔앞 광장 근처 번화가의 생선요리 전문점은 고전적인꾸밈새의 가게였다.예술가들이 많이 찾아오는 가게라 했다.
이 식당 명물요리라는 대구찜과 해물수프.사워 헤링 등을 전채(前菜)로 시켰다.사워 헤링은 얇게 썬 청어를 식초.샐러드 오일과 옥파 썬 것에 이틀 재어 뼈까지 물렁하게 만든 오드불이다.음료는 뭘 하겠느냐는 웨이터 말에 아리영이 우변 호사에게 말을 건넸다.
『아콰비트라는 덴마크 특산 술이 있다던데요.』 『아콰비트? 굉장히 독한 감자술인데요.』 『이 고장술로 건배하고 싶어요.』우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아콰비트와 술안주로 캐비어를시켰다.술과 안주가 먼저 나왔다.작은 빙산(氷山)처럼 하얗게 서슬꽃이 핀 차디찬 술병과 오렌지색 사기사발에 수북이 담긴 까만 상어알 안주의 풍요로운 조화에 아리영은 저 도 몰래 한숨을쉬었다. 『아콰비트는 캐비어를 푹푹 떠서 안주삼아야 더 맛있습니다.… 북구식 건배법을 아십니까?』 우변호사가 아리영 잔에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스콜 말씀이신가요?』 『잘 아시는군요.자,그럼 이 고장술과이 고장식 건배로 우리의 행복을 자축할까요?』 「스콜」은 「두개골」을 뜻하는 덴마크 말이다.옛 바이킹들은 왼쪽 가슴 심장 위에 술잔을 대고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며 「스콜」이라 외친 다음 술을 마셨다는 얘기를 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다.
『스콜!』 백야의 첫 만찬은 이렇게 시작됐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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