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디브한테 "어휴, 속 터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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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하고 무기력한 플레이로 약체 몰디브에 득점 없이 비긴 한국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나오고 있다. 한국은 이날 3명이나 경고를 받았다. [말레(몰디브)=연합]

▶ 몰디브 선수들이 국기를 들고 경기장을 돌면서 마치 승리라도 한 듯 환호에 답하고 있다. [말레=연합]

어이없는 무승부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 22위이자 월드컵 4강국인 한국이 랭킹 142위의 약체 몰디브로부터 한골도 뽑아내지 못했다. 전략도 파이팅도 없는 졸전이었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이끄는 한국 국가대표팀은 31일 밤(한국시간) 몰디브의 말레 경기장에서 벌어진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7조) 2차전에서 홈팀 몰디브와 0-0으로 비겼다. 1차전에서 레바논을 2-0으로 꺾은 한국은 1승1무를 기록, 이날 레바논에 0-2로 진 베트남(1승1패)을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어찌 보면 예고된 졸전이었다. 차두리(프랑크푸르트)를 현지로 불러들여 놓고 발등뼈에 금이 간 부상 상태임을 알고 다시 독일로 돌려보내는 바람에 한국은 엔트리 18명도 못 채운 채 17명만으로 경기에 나섰다. 축구협회와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이 같은 태만에 선수들의 무기력까지 겹쳐 경기는 90분 내내 답답함으로 일관됐다.

꼭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탓이라고 보기엔 선수들의 정신력이 지나치게 흐트러져 있었다. 거의 모든 선수가 수비에 가담해 필사적으로 버틴 상대의 밀집방어를 뚫을 빠른 측면돌파도, 날카로운 스루패스도, 정교한 세트플레이도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이 상대를 얕잡아보는 `오만함`까지 종종 드러내면서 실수도 잦았다. 조급한 플레이를 펼치거나 주심과 부심의 판정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다가 정경호(울산).이을용(서울).설기현(안더레흐트) 등 세명의 선수가 경고를 받는 등 `축구 강국`답지 못한 어설픈 태도도 잇따랐다.

한국은 전반 20분 이을용의 패스를 안정환(요코하마)이 가슴으로 트래핑, 왼쪽으로 내준 볼을 설기현이 골문 안으로 밀어넣었으나 주심은 안정환의 핸들링 반칙을 선언했다.

한국은 후반 초반 빠른 패스워크로 잠깐 파상공세를 펼쳤으나 번번이 마무리가 부실했다.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체력과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잦은 패스 미스로 답답함을 가중시켰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몰디브 선수와 관중들은 마치 승리한 듯 펄쩍펄쩍 뛰었다. 한국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경기장을 나갔다. 지난해 10월 월드컵 1차 예선에서 베트남과 오만에 연패한 `오만 쇼크`가 5개월 만에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코엘류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오늘 결과는 내 책임"이라며 "다시는 이런 결과를 만들지 않기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3조의 일본은 싱가포르와의 원정경기에서 2-1로 힘겨운 승리를 거뒀고, 5조의 북한은 홈에서 아랍에미리트와 득점 없이 비겼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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