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검사와 前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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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밤이 깊을수록/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나는 어둠 속으로사라진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작고한 김광섭(金珖燮)시인의 『저녁에』란 작품의 마지막 두 스탠저다.74년 미국에서 세상 을 떠난 김환기(金煥基)화백은 작고하기 몇년전 이 시의 마지막 두줄을 화제(畵題)로 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란 작품을 만들었고,이 작품은 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전」의 대상(大賞)을 받았다.이 그림은 이민생활의 고독 속에서 그리운 한사람 한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찍어나간 점(點)들의 모임이다.
이산(怡山)의 시에서도,수화(樹話)의 그림에서도 얼핏 느껴지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바 윤회(輪廻)의 사상이요,인과(因果) 혹은 연(緣)의 철학이다.연이 깊으면 죽어서도 만난다지만 이승에서의 인연도 그에 못지 않게 끈질긴 데가 있 다.물론 악연(惡緣)도 포함된다.
30년대에 김춘광(金春光)이 쓴 신파희곡 『검사와 여선생』은「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전형을 보여준다.탈옥수의불쌍한 딸을 돌봐주던 여인이 남편의 오해로 옥신각신하던중 남편이 들고 날뛰던 총을 빼앗으려다 남편을 죽게 해 살인혐의로 기소된다.여인의 국민학교 교사시절 제자로 그녀에게 큰 은혜를 입었던 담당 검사는 무죄를 주장한 끝에 옛 스승의 살인혐의를 벗겨준다는 줄거리다.
그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다.특히 권력의 부침(浮沈)이 무상하면 입장이 바뀌어 맞부닥치는 경우도 많다.
최근의 정치드라마에도 비쳤지만 유신시절 보안사에 끌려가 곤욕을치렀던 전두환(全斗煥)씨가 12.12쿠데타 이후 당시 사령관을보안사로 불러 혼을 내준 것도 좋은 예다.
구속된 全씨를 수사하는 특별수사본부의 검사 4명중 3명이 12.12 및 5.18때 대학생이었다니 다시금 아이러니를 느끼게한다.캠퍼스에서 현대정치사의 오욕스런 두 사건을 바라보는 심정은 어땠으며,지금 그 두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 는 감회는 또어떨까.아니 그보다 천하를 호령하던 시절의 대학생이었던 젊은 검사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야 하는 全씨의 심회(心懷)가 어떨는지그것이 더욱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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