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탄핵정국 후 경제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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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통령 탄핵소추가 우리나라를 위기에 몰아넣고 경제가 붕괴할 것이란 걱정이 많았지만 우리 경제는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다. 사실 필자를 포함해 상당수 경제전문가는 탄핵 정국이 일시적으로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하겠지만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 이유로 우선 실물 부문을 보면 세계 경제의 완연한 회복세에 힘입어 수출 증가 추세가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수 또한 투자는 대부분의 기업이 총선 때까지, 그리고 대선자금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미루고 있었기에 이번 탄핵 정국으로 인해 갑자기 줄어들지는 않을 테고, 소비는 이미 바닥에 이른 상태여서 더 이상 감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시스템 잘 돌아가는 금융시장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인데 단기적으로 분명히 동요가 있겠지만 대통령이 직무정지됐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기에 추가적 악재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더 나빠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탄핵안 통과 직후 잠시 주가.외평채 가산금리 및 환율이 급변했지만 곧 정상을 되찾았다.

이제 관심사는 탄핵 정국 이후 우리 경제의 향방이다. 이에 대해선 몇 가지 시나리오별로 전망이 가능하다. 먼저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만약 탄핵이 통과된다면 대규모 시위와 노조의 동조 파업 등이 잇따르면서 단기적으로는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상당한 경제불안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얼마나 빨리 정국이 안정되느냐에 따라 경제 전망은 더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탄핵이 헌재에서 기각될 경우엔 총선 결과에 따라 경제 전망이 달라질 것이다.

첫째, 여당이 국회의석 반수 이상을 차지했을 경우다. 이 경우엔 참여정부가 지난 1년간 국정 운영의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고, 국민통합적이고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책으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한다면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가 살아나고 소비도 되살아나 우리 경제가 회복국면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탄핵 직전 대통령 특별기자회견에서 보인 것처럼 현 경제난국에 대해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무기로 언론과 반노(反盧) 그룹을 고사하려 하고 지나치게 진보적 개혁을 추진한다면 이 나라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둘째, 여당이 과반수 의석은 획득하지 못하지만 1당이 될 경우엔 정부가 앞에서처럼 국민통합적 국정 운영의 전환과 더불어 야당과 협조관계를 유지한다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이전의 국정운영 방식을 고집한다면 투자와 소비는 살아나지 않고 경제는 여전히 혼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여당이 지금보다 의석수는 조금 더 확보하지만 1당이 되지 못할 경우엔 정책 전환과 더불어 야당과 협조한다면 앞의 두 경우보다는 못하겠지만 투자와 소비가 어느 정도 살아날 것이다. 그러나 정책 전환을 하더라도 야당과 적대관계를 유지한다면 탄핵 정국 이전처럼 경제불안이 계속될 것이다. 만약 정책을 전혀 바꾸지 않는다면 경제상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위기에 빠질 것이다.

*** 단기 부양책 부작용 부를 수도

이 시나리오가 시사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경제가 본격적으로 살아나려면 탄핵 정국 이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국정 운영의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경제난국의 근본 원인인 정치.사회적 불안요인을 제거하면서 성장.경쟁력 중심의 경제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당분간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전념해야만 한다. 그리고 법과 제도를 통한 정치개혁은 계속 추진하되 편가르기를 지양하고 야당.언론.보수 기득권층을 포함한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국민통합적 자세가 필요하다.

최근 정부가 특소세 인하, 예산조기 집행 및 총선 후 추경편성, 서비스 산업 세제지원, 신용불량자 대책, 일자리 창출 지원을 포함한 단기적 경기부양책들을 연일 발표하고 있지만 이들은 경기가 근본적으로 살아나지 않으면 재정적자를 포함한 부작용만 초래할 뿐이다. 근본적인 국정 운영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이러한 미봉책은 지난 1년의 실패를 반복할 뿐임을 인식해야 한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