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불공정 거래” … 과징금 260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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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인 인텔이 PC 제조업체에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5일 미국 인텔 본사와 아시아지역 총판, 인텔코리아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를 적용해 과징금 260억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인텔은 2002년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AMD의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를 구매하자 이를 중단하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2002년 4분기부터 2005년 2분기까지 인텔의 CPU만 사들였고, 인텔은 삼성전자에 가격할인·판촉 지원 등의 형태로 3000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건넨 것으로 나타났다. 인텔은 또 삼보컴퓨터에 자사 제품을 일정 비율 이상 쓰는 등의 조건으로 모두 750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2001~2005년간 인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평균 91.3%에 달했다. 같은 기간 세계 시장 점유율인 79.6%보다 훨씬 높아 사실상 한국 시장을 장악해 왔다. 당시 AMD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8.4%에 불과했다.

공정위는 “인텔의 리베이트 규모를 감안하면 AMD는 CPU를 무료로 줘도 가격 경쟁이 불가능했을 정도”라며 “국내 PC 제조사들이 상대적으로 비싼 인텔사 CPU만 사용하게 돼 소비자들도 PC를 보다 비싼 가격에 사게 됐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AMD 제품을 얹은 PC는 인텔 제품을 쓴 PC에 비해 가격이 평균 10%가량 싸다.

공정위는 2002년 AMD가 신제품을 출시하며 호응을 얻자 인텔이 한국은 물론 유럽연합(EU)·일본 등에서 동시에 조건부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전략을 쓴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인텔의 반독점 혐의를 조사 중인 EU와 미국 경쟁 당국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인텔 코리아 관계자는 “가격 경쟁의 일환일 뿐 리베이트가 아니다”며 “가격 할인이 문제가 된다면 이는 소비자 이익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텔 측은 “이번 결정을 면밀하게 검토해 필요하다면 법원에 판단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도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광고에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넣어주면 인텔이 광고비의 일부를 지원해준 것으로, CPU 사용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은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공정위가 거대 다국적 정보기술(IT) 업체에 제재를 가한 것은 2005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공정위는 MS가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윈도에 메신저 등을 끼워 팔았다며 과징금 324억원을 부과했다. 또 휴대전화 기술인 부호분할 다중접속방식(CDMA)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퀄컴사에 대해서도 현재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공정위가 다국적 IT 업체 제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며 “인텔과 MS를 제재하고 퀄컴에 대해 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은 불공정거래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창우·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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