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국 ‘보드게임 올림픽’ 이창호·이세돌 “안 나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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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이 제1회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WMSG)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기원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당사자들이 중국에 가 있어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한국기원 한상열 사무총장은 “불참 의사만 통보받았을 뿐 불참 사유나 요구조건이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돌아오면 두 기사가 한국 대표팀에 꼭 합류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10월 4일부터 17일까지 약 2주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인 제1회 WMSG는 체스·브리지·바둑·체커·중국장기 등 전통 깊은 5개의 보드게임에서 35개의 금메달을 놓고 겨루는 경기다. 유럽의 세계브리지연맹, 체스연맹 인사들과 중국기원이 손을 잡아 추진했고, 올림픽이 끝난 직후 올림픽 경기장에서 이 대회를 열어 올림픽의 열기를 마인드 스포츠까지 확산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6월 말의 엔트리 마감이 끝나봐야 알겠지만 현재 예상 참가국은 100여 개국. 약 2000명의 선수가 운집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둑은 남녀 개인전, 남녀 단체전, 페어바둑(남녀 2인 1조), 오픈 개인전(아마추어) 등 6개의 메달이 걸려 있다.

중국은 1인자인 구리 9단이 “올해의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과 함께 월드마인드스포츠게임에서 중국의 우승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일찌감치 이 대회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창하오 9단, 쿵제 7단, 루이나이웨이 9단 등 남녀 정상급이 모두 출전하기로 했으며 3개의 금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도 기성(야마시타 게이고 9단), 본인방(다카오 신지 9단), 천원(고노린 9단) 등이 모두 참가하는 최강팀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대회는 참가비는 있지만 상금은 없는 대회다. 긴 대회 일정도 프로들에겐 부담이 된다. 또 바둑에 걸린 메달 수(6개)가 체스(10개)나 브리지(9개)에 비해 너무 적고 오히려 프로 제도가 정착되지도 못한 체커(5개)나 중국장기(5개) 등과 비슷한 처지여서 바둑이 이들의 들러리를 서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한국기원은 바둑의 세계화에 동참하고 최강 한국 바둑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첫 대회 우승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 대회에 적극 협력하기로 방향을 정했고 이미 랭킹 12위까지의 기사들과 여자 강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참가’ 의사를 확인했다. 아직 최종 명단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최정상 프로기사 20명에 아마추어(연구생) 4명 수준으로 선수단을 구성하기로 내부 방침도 정했다. 상금이 없는 점을 감안해 금메달을 획득할 때엔 5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팀의 축이라 할 이창호·이세돌 쌍두마차가 출전 거부 의사를 통보하면서 난관에 봉착한 것이다.

두 기사의 출전 거부는 자존심과 어색함, 상금 부재 등이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바둑이 타 종목의 들러리성이라는 일부의 비판, 세계 최강인 한국과는 아무런 사전 상의 없이 대회가 추진된 점, 등 번호를 붙이고 복잡한 대회장에 나서야 하는 생경함, 상금이 없는 데다 우승 보너스도 너무 적은 점, 바쁜 일정 등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일단 추측되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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