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고개 든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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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42년 8월15일 모스크바에서 처칠과 스탈린이 만났을 때의 일이다.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처칠은 30년대 초.중반에 걸쳐 소련(蘇聯)에서 일어났던 대숙청과 학살에 대해 물었다.『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점에선 같지만 전쟁이 어렵 습니까,숙청이 어렵습니까.』 스탈린은 이렇게 대답했다.『전쟁보다 훨씬 더어려웠습니다.몇년이나 걸렸지요.대부분의 부농(富農)들은 그들을미워하는 농민들에 의해 학살됐습니다.1,000만명쯤 되지요.하지만 농업기계화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결국 농업생산량은2배로 늘어났으니까요.』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다음의 한마디가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한 인간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100만명의 죽음은 통계상의 문제일 뿐입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훌륭한 통치의 첫번째며 정당하고도 유일한 목표는 인간의 생명과 행복의 파괴가 아니라 그것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정치권력을 행하려는 사람은 도덕적.윤리적으로 인간생명의 존중 과 그 수탁자(受託者)로서의 역할을 첫번째 의무로 삼아야 함을 뜻한다.하지만 현대 정치사를 훑어보면 그 기본적 전제를 무시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권력유지를 위해 수많은 국민의 목숨을 빼앗는가 하면 권력장악을 위한 방법으로 무고한 양민을 마구 살상하기도 한다.
5공화국은 광주학살을 그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가 비극적이었다.당시 신군부의 전두환(全斗煥)씨나 그 추종세력은 권력의 몰락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고,그래서 200여명의 희생자를 단지 「통계상의 문제」로만 간주했을 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 사람의 마음도,생각도 바뀌게마련이라는데 검찰의 소환에 대한 全씨의 발언을 보면 15년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다.다 접어두더라도 광주 희생자나그의 집권시절 온갖 박해를 받았던 국민들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만 곁들였더라도 국민들의 분노를 얼마쯤은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것이다.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비통한 마음」을 토로하는 그에게서 무엇을 느끼겠는가.그 자신으로 인한 슬픔과 비극의 본질부터 깨달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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