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볼 ~ ” 야구가 시작되면 부산은 뒤집어 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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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두산을 누르고 단독 2위로 올라선 3일. 사직야구장은 또 다시 뒤집어 졌다. 경기장은 열광의 바다였다. 야구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부산이 왜 이렇게 야구에 열광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부산에선 야구는 야구고, 다른 종목은 그냥 스포츠다.”

부산에서 야구는 다른 스포츠와 다르다는 얘기다. 부산에선 야구가 아니면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진정한 지역 연고 팀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허재와 강동희가 전성기 시절 활약했던 기아 농구팀이 그랬고, ‘야생마’ 김주성이 뛴 대우 로얄즈 축구팀도 ‘같은 식구’란 소릴 듣지 못했다. 두 팀 모두 자기 종목에선 밥 먹듯 우승했지만 야구가 아니라서 부산 사람들 모두가 동의하는 부산 팀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부산 사람들은 야구를 잘 안다. 이태일 네이버 스포츠팀장은 “역사적으로 부산에서 야구가 발전했다. 6·25전쟁 중에도 야구가 끊기지 않았다”며 “그래서 야구라는 코드의 이해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성득 KNN(부산경남방송) 야구 해설위원은 “부산은 일본과 가까워 국내 프로야구가 생기기 이전부터 수준 높은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봤다”고 소개했다. 다른 지역보다 야구에 대한 안목이 일찍 트였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토대 위에서 부산에선 1960년대부터 라이벌전이 열렸다. 부산고-경남고, 부산상고(현 개성고)-경남상고(현 부경고)는 서울의 연·고대 경기처럼 지고는 못 사는 진짜 라이벌이었다. 허구연 MBC-ESPN 해설위원은 “이들 팀 간 야구 경기가 열릴 때면 온 도시가 뜨거웠다”고 회고한다. 부인, 초등학생인 아이 둘을 데리고 사직구장을 찾았다는 직장인 김모(39)씨는 “나도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야구장에 왔다”며 “부산 아이들은 야구장에서 자라고 야구의 꿈을 꾼다”고 말했다.

항구 도시 부산과 야구의 속성을 연결시키는 해석도 있다. 부산은 항구 도시다. 항구를 떠나 거친 먼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항구로 돌아오는 것이 뱃사람들의 숙명이다. 야구도 홈에서 출발해 거친 다이아몬드를 거쳐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경기다. 돌다 보면 주루 플레이 미숙으로 횡사하기도 하고, 도루에 성공하기도 한다. 이런 야구가 바다를 떠나 살 수 없는 부산 사람들의 노스탤지어를 풀어 주는지도 모른다.

흔히 부산 사람들을 보고 기질상 화끈하다고 말한다. 김정환 롯데연합서포터즈 대표간사는 “야구는 자기 표현을 잘하고 속말을 담아 두지 못하는 부산 사람들과 잘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공 하나 던진 후 중단되고 이닝이 끝나면 쉬는 시간이다. 야구가 정적인 스포츠라고 하지만 관중은 그 틈에 선수들 대신 경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다. 부산 팬들은 상대 투수가 견제구를 거듭 던지면 “(임)마!마!마!”라고 소리지른다. 홈팀 타자에겐 “쎄리라” “홈런을 쳐 달라”는 노래도 부른다. 관중이면서 동시에 경기의 주도자로 나서는 것이다.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 부산 관중의 입김이 세다”고 말했다.

부산 사람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유명하다. 일간스포츠 김식 야구 전문기자는 “부산에 가 보면 관중이 경기보다는 응원에 더 열중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체면에 덜 얽매이는 부산 사람들인지라 응원을 놀이라 여기고 한껏 즐기는 인상이다. 치어리더뿐 아니라 전 관중이 춤추는 것도 그래서다. 2002년 월드컵 응원 축제의 경험까지 녹아들었다.

야구에 대한 사랑은 부산 사람 특유의 애향심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 2003년 ‘영호남 프로야구 경기가 지역감정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쓴 이근모 부산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설문조사 결과 부산 사람들이 롯데를 응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 연고팀이기 때문’이었으며 수치가 83%나 됐다. 광주(35.%)나 대구(62.2%)보다 훨씬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부산이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시민들은 정작 그만 한 정치적·경제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야구는 이런 소외감이 표출되는 통로”라고 분석했다. 한국 스포츠사회학회장인 전남대 체육교육과 윤이중 교수도 “롯데에 대한 집착은 수도권에 대한 대항의식”이라고 봤다. 축구 한·일전에서 승리하면 마치 한국이 일본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부산 사람들도 롯데의 승리를 통해 수도권에 대한 박탈감을 해소한다는 얘기다.

부산=정선언 기자

부산갈매기들 왜 야구에 열광하나

- 6·25전쟁 중에도 야구가 끊기지 않은 야구 도시
- 국내 프로야구가 생기기 전에도 일본 프로야구 시청
- 부산고-경남고 등 야구 명문고 간 라이벌전이 흥행몰이
- 다이아몬드를 돌아 홈으로 돌아오는 야구, 항구로 돌아오는 뱃사람들의 노스탤지어 자극
- 가무를 즐기는 화끈한 기질, 야구장에서 강렬한 응원문화 만들어
- 강한 애향심. 제2도시로서 수도권에 대한 대항의식을 야구를 통해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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