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부통령 나서면 드림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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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사실상 경선 승리를 확정 지은 3일(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뉴욕에서 지지자들에게 “오늘 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바마 의원은 많은 미국인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했다. 그 덕분에 민주당과 민주주의를 더 강하고 생생하게 만들었다. 그와 그의 지지자들의 업적을 기리고 싶다”며 오바마를 높게 평가했다.

AP통신은 이날 “힐러리가 경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지렛대를 확보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힐러리는 2일 뉴욕 주의원들과의 모임에서 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오바마가 히스패닉 등 주요 유권자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당신을 러닝메이트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11월 대선에 도움이 된다면 러닝메이트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많은 민주당원들은 오바마 대통령-힐러리 부통령 후보를 대선 승리를 위한 ‘드림팀’으로 보고 있다. 이 팀은 장기간의 경선으로 분열된 민주당을 통합할 수 있는 카드다. 힐러리 지지자들은 오바마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대선에서 기권하거나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존 매케인을 찍겠다고 밝혀 왔다. 따라서 힐러리의 지지가 없다면 오바마는 매케인과의 본선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볼 수 있다. 힐러리는 경선에서 오바마와 비슷한 1800만여 표를 얻었다. 게다가 미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미시간주 등 경합 지역에서 오바마에게 승리를 거뒀다. 백인 노동자층 및 여성,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오바마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오바마가 힐러리를 부통령 후보로 영입할 경우 자신의 약점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오바마도 3일 경선 승리 연설에서 힐러리를 치켜세우며 오바마-힐러리 동반 티켓 가능성을 열어 놨다. 오바마는 “우리가 결국 전 국민 의료보장제 도입에 성공한다면 그 승리의 핵심은 힐러리 덕분”이라며 “힐러리는 어떤 여성도 과거 이루지 못한 업적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바마가 힐러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데 따르는 위험 부담도 작지 않다. 사상 첫 흑인 대통령-여자 부통령 후보가 대선에 나서면 미국 사회의 주류인 백인 유권자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또 오바마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힐러리가 부통령 역할에 만족하지 않아 대통령과 부통령이 갈등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부통령 남편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도 오바마 입장에선 껄끄럽다.

힐러리는 부통령 후보 지명을 받지 못하면 상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경우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상원에서 힐러리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선 경선 때처럼 각광받지 못할 힐러리로서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야 할 판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올 대선에서 실패한다면 힐러리는 2012년 다시 대선을 노릴 수도 있다.

한편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4일 힐러리의 실패 원인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힐러리는 실력보다는 친분을 앞세워 핵심 참모를 뽑아 선거 진영이 갈등을 빚었다. 둘째, 과거 퍼스트 레이디로서 백악관 경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느라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 심리를 읽지 못했다. 셋째, 코커스(당원대회)의 중요성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민주당 대선 경선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넷째, 클린턴 전 대통령이 힐러리의 대선 경선에 깊숙이 개입하며 “힐러리가 당선되면 클린턴이 백악관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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