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 '통일로 가는길' 주제발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북한 김일성(金日成)사망 이후 남북관계가 불확실성의 물결을 타고있는 가운데 28일 연세대에서 「통일 사회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렸다.연세대 통일연구원(원장 송자) 개원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한 북한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지금은 구호가 아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통일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다음은 이날 발표된 4편의 주제발표 요약.
[편집자註] 남한 대중매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북조선에 대한 인식은 「불쌍하다」는 것과 「촌스럽다」는 표현으로 압축된다.불쌍하다는 것은 가난하기 때문이며,촌스럽다는 것은 이미 남한이 거쳐온 역사적 단계를 북조선이 이제야 거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역사가 단선(單線)적으로 진보한다고 보는 단선진화론과 서구식 발전을 모델로 그 모델에 가까이 갈수록 세련되고 향상된 사회가 된다는 근대화론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이런 정서의 핵심은 만남의 주도권 싸움으로 권력을 가진 쪽에 서 상대를 약자로 규정하고 구제의 대상으로 삼아 통제하려 드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닌다.
한편 남한에는 제국주의적 근대론과 구별되는 민족주의적 시각도엄연히 존재한다.
이는 지난 80년대 통일운동을 지배했던 『그날이 오면 죽어도좋으리…』식의 정서에 「혈육」과 「원초적 집단」,그리고 「순수한 민족정기」같은 민족주의를 접합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시각에는 「통일은 신성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남한과 북조선 문화가 공유하는 배타성과 획일성은 바로 이같은민족주의 역사성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조직차원에서 강력한 국가와 배타적인 가족집단만 존재하고 그 사이를 연결하며 새로운 삶을 만들어갈 중간집단 내지 시민사회의 토대가 극 히 미약한 점역시 역사의 또다른 면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질성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성을 느낀다.동질성에 대한 집착이 핵심적 문화적 원리라면 사회통합 과정에서 난항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한과 북조선의 사회통합은 이런 면에서 단일성을 아름답게 느끼는 민족주의를 해체하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두 개로 나뉜 반쪽이 만나 하나의 집을 짓기 전에 나뉜 것들이 공존할 수 있는 집을 먼저 짓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화적 차원의 남북통일은 내부의 이질성과 갈등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힘을 길러가는 방안을 마련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는 근대화와 자기자신에 대한 성찰의 작업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해온 약육강식적 민족주의와 순진한 진보주의를 해체하고 탈식민지적 근대화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의 식민지적 근대화 진행과 분단체제가 낳은 문화적 특징에 대해 알아가야 함을 뜻한다.전통을 붙들고 집착하면서 본질화시키기보다 「새 집」을 지어가야 한다.
조혜정 (연세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