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123) 서울 강남을 민주당 박정일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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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 출신 기업인이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 강남을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여의도 입성을 노리는 민주당 박정일(43) 후보가 바로 그다. 법조계와 언론계 출신이 많은 정치권에서도 이공계는 마이너리티다. 한양대와 이 대학 대학원 전자공학과를 나온 박 후보는 “국제 감각을 지닌 IT 전문가로서 21세기 조국의 미래상을 설계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후보는 출마 직전까지 캐나다 밴쿠버에서 유학 중이었다. 삼성SDS 도쿄사무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업계에서 IT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던 그가 불혹의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늦깎이 유학생의 길을 걸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인생이 팔십이라면 유학을 결심한 때가 인생의 반환점을 막 돈 시점이었습니다. 10년 일본생활을 바탕으로 좀 더 넓은 세계로 나가 언어와 역사 그리고 또 다른 문화를 공부해 보고 싶었죠.”

그랬던 그가 잘 나가던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을 결심했다.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수백만 명의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해마다 그 수가 늘고 있는데, 이런 양적인 성장에 비해 조국의 발전이 더딘 게 늘 아쉬웠다”고 말했다.

“TV 홈쇼핑 채널의 캐나다 이민 상품 대박, 해외 원정 출산 붐 등의 소식을 접하면서 젊은 세대가 조국을 떠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3류, 아니 5류로 전락한 한국 정치를 바꾸는 것뿐이라고 판단했죠. 그래서 생소하지만 직접 정치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동안 그는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길을 걸었다. 총선 출마를 결심하자 주변의 지인들이 ‘현실을 모르는 무모한 도전’이라며 만류했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정치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어느 분야든 경험은 중요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인 상(象)은 구태의연할 뿐 아니라 부패 이미지로 얼룩져 있습니다. 지금은 경륜 있는 정치인보다 개혁 마인드와 전문성을 갖춘 참신한 정치 신인이 필요한 때입니다. 여기에 저는 국제 감각까지 갖추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박 후보는 이번에 국회에 진출하면 IT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지금 과기위에 18명의 상임위원이 있지만 공대 출신은 고작 2명입니다. 모든 상임위가 법조인·학생운동가 또는 의원 보좌관 출신들로 채워져야 할까요? 정치권도 분야별로 걸맞은 전문가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 박정일 후보는 지금의 정치 상황이 410년 전 임진왜란 당시와 닮았다고 말했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앞두고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했다. 통신사로부터 침략 준비에 대한 보고를 들었지만 당파 싸움에 휘말려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다. 지금의 한국은 그에 못지않은 위기 상황인데 정치권이 서로 싸우느라고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박 후보는 “이번 총선에선 나라가 처한 이런 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타개책에 대해 고민하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사진=지미연 월간중앙 기자

박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스스로 정한 목표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돈 안드는 선거 운동’이 그것. 개정 선거법에 선거비용의 한도액이 정해져 있지만, 정치 신인이 자신을 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는 법정 한도액 범위에서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어려서부터 선거 때만 되면 수많은 행사와 모임을 통해 돈봉투가 뿌려지는 걸 보아 왔습니다. 오죽하면 40락50당(40억원 쓰면 낙선하고 50억원 쓰면 당선한다)이란 말이 다 있겠습니까? 저는 오랜 외국생활을 통해 선진국의 깨끗하고 투명한 정치 문화를 목격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돈 많이 드는 정치 문화부터 바꾸어야 돼요. 이것이 정치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신인으로서 강남 을에 도전한 이유는 ‘강남이 변해야 서울이 변한다’는 믿음에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사는 강남이 정치 개혁과 경제 발전의 선봉에 서야 대한민국이 변한다”고 말했다. 쉽진 않겠지만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거라고 했다. 그는 또 이번 선거만큼은 유권자들이 소속 정당보다 인물 가치를 보고 선택해 주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지역구인 강남의 핵심 현안으로는 교육 문제를 첫손꼽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로, 문제 해결이 시급하지만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붕괴 위기의 공교육을 바로세우는 게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강남은 아파트 단지가 많고, 중산층 샐러리맨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교육이예요. 과다한 사교육비 지출도 큰 짐이죠. 고교 평준화 유지, 국공립대 경쟁력 확보 등 이밖에도 연구할 부분이 많습니다. 일단 단기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사교육을 금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 후보는 지금의 정치 상황이 100년 전 조선 말기 또는 그에 앞선 임진왜란 때와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또 다시 위기를 맞을 게 불 보듯 뻔하다고 강변했다.

“대한민국은 지금 위기 상황입니다. 이웃의 중국은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렸고, 일본은 이미 세계 2위의 경제대국입니다. 이들 나라는 국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런데 정치에 발목 잡힌 한국은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바꿔야 합니다. 새로운 한국의 비전을 실현하려면 이번에 꼭 바꿔야 합니다.“

김미정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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