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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국가대표 우제원 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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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26일 오전 전북 김제시체육관. 가슴에 호랑이마크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풋살(실내축구) 국가대표팀이다. 한 팀 다섯 명이 핸드볼 경기장 크기(20×40m)의 공간에서 하는 풋살은 경기 템포가 빠르고 운동량도 많다. 팀 최고참인 우제원(32) 선수도 후배들과 어울려 땀을 뻘뻘 흘렸다.

점심을 먹은 우씨는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오후 8시. 서울 왕십리의 한 사우나에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과장 우제원'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오전 8시까지 꼬박 12시간 동안 그는 3000평의 대형 사우나 겸 찜질방 관리를 책임진다. 술 취한 손님의 입장을 막고, 장내 질서를 유지하는 경호 업무에다 VIP 손님의 심부름까지 모두 그의 몫이다.

'밤에는 찜질방 직원, 낮에는 풋살 국가대표'. 우씨의 두 얼굴 인생은 굴곡투성이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중학 시절까지 육상(중장거리.장대높이뛰기)을 했고, 고교(성보고)에 입학하면서 축구로 바꿨다. 워낙 늦게 축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대학에 못 가고 실업팀 임마누엘에 들어갔다. 이랜드를 거치면서 '성실한 수비수'로 인정받았고, 98년 프로축구 LG에 입단했다. 그러나 고질적인 발목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2년 동안 불과 다섯 경기만 뛰고 서울시청으로 밀려났고, 2002년 1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퇴출당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여성복 도매 일을 배우고, 여기저기서 축구 기술을 가르치던 우씨는 2002년 말에 한 유흥주점에 취직했다. 사장은 "PR(영업)를 하라"며 그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는 무려 아홉 군데의 조기축구회에 등록한 뒤 회원들을 '손님'으로 흡수했다. 밤새 일하고 낮에 축구경기 세 판을 뛰기가 다반사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수입은 좋았고, 체력과 기술도 현역 때 못지않게 유지할 수 있었다. 지난해 말 그가 속한 영서축구클럽이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한 전국풋살대회에서 우승했다. 축구협회는 올 1월 풋살 국가대표를 선발하며 클럽팀 소속으로는 유일하게 우씨를 발탁했다. 태어나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는 유흥주점을 그만뒀다.

우씨는 다음달 16일부터 마카오에서 열리는 아시아풋살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이 대회는 풋살월드컵(11월.타이베이) 아시아지역 예선도 겸하고 있다. 정진혁 대표팀 감독은 "제원이는 성실한 데다 수비력.슈팅력도 좋아 팀의 기둥"이라고 칭찬했다. 하루 1시간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온 그의 몸은 영화배우 권상우를 능가할 정도로 완벽한 근육질이다.

그는 앞으로 스포츠센터를 운영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하루빨리 노총각 신세를 면하고, 홀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고 싶기도 하다.

일요일인 28일 오전 11시. 우씨는 서울역에서 다시 김제행 열차를 탔다. 오후 3시에 훈련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푸짐한 웃음을 머금은 대답이 돌아왔다. "힘들 리가 있나요. 꿈이 있는데…."

글.사진=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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