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병영에 꽃핀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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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달 27일 2사단 수색대대에 새로 전입해온 주진용 이병과 함께 포즈를 취한 박범석 대대장. 부대는 장병 부모와 연인 등이 볼 수 있도록 이 같은 사진과 근무하는 모습 등을 담은 사진을 카페에 올리고 있다. [수색대대 제공]

‘정이 살아 있는 부대, 감동이 넘치는 부대’.

중부전선 최전방인 강원도 양구 육군 2사단 수색대대를 이르는 말이다. 대대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아버지를 잃고 슬픔과 어려움에 빠진 장병에게 베푼 사랑이 감동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름다운 감동으로 승화된 사연은 이렇다.

이 부대 최모 상병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달 20일. 최 상병은 위로휴가를 받아 구로고대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치료비와 장례비가 없어 빈소도 마련하지 못하는 등 아버지를 잃은 슬픔보다 절망감에 빠졌다. 친척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이 때 그에게 다가온 것은 대대장과 간부들의 따뜻한 손길. 중대장으로부터 최 상병의 딱한 소식을 들은 대대장 박범석(46)중령은 100만원을 냈고, 나머지 간부들도 빠짐없이 동참해 400만원을 모아 보냈다. 박 중령은 부대 행정보급관과 부 소대장, 최 상병의 동기 2명 등 4명을 보내 장례를 치르도록 지원했다. 이 때문에 하루 늦게 빈소를 차렸지만 최 상병은 무사히 장례를 치르고 부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사연은 휴가 중 최 상병의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 간 지동혁 상병이 부대 카페(http://cafe.daum.net/NDbiho)에 올렸고, 이를 본 장병의 부모가 다른 곳에 옮겨 나르는 등 번져 나갔다. 부대에 복귀한 최 상병은 대대장과 간부에 감사를 표하고, 남은 기간 더 열심히 근무하겠다는 다짐의 글을 올렸다. 이 사연이 알려지자 2사단 사단장은 지난달 29일 ‘뜨거운 전우애로 큰 슬픔에 잠긴 전우를 도운 여러분의 감동적 선행을 부대 전 장병과 함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지휘서신을 보냈다.

수색대대가 정이 넘치는 부대가 된 것은 비단 이번 일만은 아니다. 이등병이 신병교육대에서 부대로 배치되면 대대장 지프 등으로 이들을 모셔(?)오며, 즉시 부모에게 안부전화를 걸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 대대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카페에 올려 부모를 안심시키고 있다. 이등병들이 안정적으로 군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간 동안은 ‘이등병의 날’로 정해 부대 내 PC방과 피엑스·노래방·풋살장·족구장을 이등병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부대 카페도 활성화됐다. 가족방과 연인방 등을 꾸며 장병과 가족 및 연인이 간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도록 했다. 박 중령은 밤잠과 새벽잠을 줄여 대부분의 글에 댓글을 달 정도다. 카페가 활성화되자 컴맹이던 부모가 컴퓨터를 배우기도 했다.

부대는 또 일주일마다 중대 단위로 이병이 일병을, 일병이 상병, 상병이 병장을 모범장병으로 추천하는 제도를 운영해 장병간 화합을 다지고 있다. 또 표창 대상자에게는 시상식 자리에서 하나, 코팅해 휴가가면서 집에 가져가게 또 하나, 사진과 함께 스캔 해서 카페에 올리는 것 하나 등 모두 3개의 표창장을 줘 공개적으로 장병의 기를 살려주고 있다.

그렇다고 이 부대가 한없이 부드러운 것은 아니다. 부대 슬로건 ‘군인다운 군인, 군대다운 군대’가 의미하듯 전투력을 기르기 위한 훈련과 전방 경계 등 본연의 업무는 엄격하고 철저하게 이뤄진다.

우울증으로 삶을 포기하려던 부하를 잘 보살핀 공로로 지난해 육군 참군인상을 받기도 한 박 중령은 “지휘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박 중령은 지난해 4월 부임 후 형편이 어려운 장병에게 매달 5만원과 월드비전 등에도 후원하고 있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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