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촛불시위 그만하면 충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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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대한민국에는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유가 급등과 세계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경제위기나 청년실업 등 국가 현안은 정부와 국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시민단체 활동가, 학생, 시민, 주부 등의 야간시위로 도심 교통이 마비되고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시민들이 공권력을 존중하고 두려워하기는커녕 조롱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금명간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시위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충분히 전달된 만큼 한 발 물러나 정부 대응을 지켜보는 것이 옳은 자세라고 본다.

지난주부터 시위 현장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 주장은 점차 줄어들고 정치구호가 많이 들리는 등 집회의 성격이 변질되고 있다. 6·10 항쟁과 6·15 남북 정상회담 기념을 계기로 100만 명이 참가하는 대형 집회가 모색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6·10 항쟁, 그리고 통일사업이 무슨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주장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이는 민주화를 일궈낸 6·10 항쟁 정신을 오히려 훼손하는 발상이다.

정부의 쇠고기 협상과 대응 방법에는 분명 잘못이 있었다.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이를 정권퇴진 등 정치적인 주장과 연결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식탁안전 확보를 위해 거리로 나온 시위 참가자들의 순수성을 모독하는 짓이기도 하다. 통합민주당은 오늘 인천에서 두 번째 대형 군중집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의 장외투쟁은 정치적인 수단을 찾을 수 없을 때 택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정치인들은 이성에 근거한 분별 있고 부끄럽지 않은 행동을 해야 한다.

시위 양상이 점차 과격해지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경찰과의 물리적인 충돌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과 경찰의 충돌은 예기치 못한 불행한 국면을 초래할 수도 있다. 어제까지 현장에서 545명이 경찰에 연행돼 273명이 입건되고, 22명이 즉심에 넘겨졌다. 236명은 수사 중이라고 한다. 순수한 열정으로 본인의 생각을 표출하던 선량한 시민들이 사법처리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청년들의 정의감, 식탁안전을 말하는 주부와 중장년층의 비장함, 어린 학생들의 순수함이 사법처리로 연결되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시민 100여 명과 경찰 수십 명이 부상한 것은 또 무슨 손실인가.

한 달여 동안 계속된 시위를 통해 시민들의 의사표시는 충분했다고 본다.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쇠고기 문제를 포함한 정국운영 전반에 걸친 종합대책을 마련 중인 것이 그 증거 아닌가. 이번 시위가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지 차분하게 생각하면서 정부의 대책을 기다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할 때다. 국가적 손실과 시민들의 피해가 심각한 지경인 이번 시위는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