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살롱>비자금폭로 박계동의원 부인 한우섭 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국민적 영웅에서 여당의 프락치까지.신한은행 비자금 계좌를 폭로,사상 최초의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핵폭풍을 몰고온 박계동(朴啓東.43.민주당)의원에겐 요즘 갖가지 말들이 따라 다닌다.비자금 정국의 「스타」가 된 朴의원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수배.구속.수감을 밥먹듯 겪어온 정통 재야출신 정치인.맹렬 운동권 학생에서「스타」정치인으로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온 朴의원의 곁엔『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라면 어지간한 개인적 고통은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당 찬 아내 한우섭(韓佑燮.
40)씨가 있다.
『늦은 밤에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전화가 빗발칩니다.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갔다」「나도 노태우(盧泰愚)대통령측근이었지만 그사람 해도 너무했다」는 격려 전화가 대부분이지만「뭘 믿고 까부느냐」「누구 지시를 받았는지 다안 다」는 식의 항의.협박성 전화도 많아요.』 83년 朴의원과 결혼한 뒤 문자그대로 온갖 비바람을 함께 맞아온 韓씨지만 이번 비자금 사건을둘러싸고 쏟아지는 세간의 의혹섞인 시선은 몹시도 서운하단다.
朴의원이 국회 업무와 지역구 활동외에 비자금사건 이후 이런저런 일들로 더욱 바빠진 요즘을 韓씨는『그나마 남편 얼굴을 많이보고 지내는 나날』이라고 말한다.
80년 이후 수배생활중이던 朴의원과 친구 소개로 만나 결혼한뒤 韓씨는 단 한시간이라도 남편 얼굴을 마음편하게 바라본 적이없었다.민청련.민통련.전민련등에 잇따라 몸담으며 재야운동을 하던 朴의원은 한달에 한번꼴로 구류를 살아야 했 다.특히 인천 5.3사태에 개입한 혐의로 수배령이 내려 86년 도피생활에 들어간 남편은 옥살이를 거쳐 만4년이 지난 89년에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한돌반이던 딸아이(희진)가 유치원생이 돼서야 아빠 얼굴을 보게 된거지요.간혹가다 간첩 접선하듯 미행을 따돌리며 딸과 함께 남편을 만나러 다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쫓기는 세월동안 韓씨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재야여성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에 상근직으로 근무하며 받는 월급으로 역곡에서 부평으로,다시부천으로 집을 옮겨다니며 살림을 꾸려갔다.수배자 애인을 둔 죄로 직장(韓씨는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 업하고 Y여상 수학교사로일했다)에서 해고됐던 韓씨가 매맞는 아내를 위한 이 단체에서 일하게 된 것은 대학시절 함께 학생운동하던 친구.선배들과의 인연 때문.
韓씨는 최근 집근처(강서구화곡동)에 우리밀 살리기운동의 강서공급장을 열었다.우리밀로 만든 각종 제품과 무공해 농산물을 파는 이 작은 가게에 韓씨가 거는 희망은 크다.『주변 사람들에게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도 여성 운동 못지않은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벌이가 괜찮아 남편의 정치활동에 보탬이 된다면 더욱 좋겠지요.』韓씨의 다부진 포부다.
신예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