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입시철 풍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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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려(高麗).조선(朝鮮)은 본질적으로 과거(科擧)우선주의.시험우선주의를 표방한 관료제 사회였다.비록 그 바탕에 엄격한 신분제도의 제약이 수반돼 있기는 했지만 과거나 시험은 신분상승을꾀하거나 최소한 가문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통 과의례와도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등과(登科)를 위한 가문간의 과열경쟁은 늘 이런저런 폐단과 부정을 야기했다.국가기강이 해이해진 임진왜란 이후가 특히 심했다.글 잘 쓰는 사람 서넛을 과장(科場)에 데리고 들어가 합작 답안지를 작성케 해 빨리 제출토록 하는 조정(早呈),남의 글을 베껴쓰는 차술(借述), 남의 글을 대신 써주는 대술(代述), 시관(試官)과 수험생이 짜고 부정합격을 꾀하는 혁제(赫), 합격한 답안지에 다른 수험생의 이름을 바꿔치기하는 절과(竊科)따위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계층도 극히 제한된 특수층이고 보면 대부분의 수험생이나 그 가족들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대개 민간신앙과 관계가 있는 것들이지만 몰락한 양반가문이거나 영락(零落) 해 낙향한 반가(班家)에서는 자식들의 급제를 위해 풍수(風水)를 동원하는가 하면 굿이나 고사를 지내 천지신명께 빌기도 했다.「용꿈」이니 「돼지꿈」이니 해서 과거를 앞두고 꾸는 꿈이 당락을 좌우한다고 믿기도 했다.전혀 터무니없지만 중 요한 시험을 앞두고 찰떡이나 엿을 먹이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라 철석같이 믿은 것도 전통사회의 시험제도와 관련한 해묵은 풍습이었다.
찰떡이나 엿의 풍습은 최근까지도 남아있지만 금년 대입 수능시험을 며칠 앞두고부터 느닷없이 수험생들 사이에 화살촉을 원판에던져맞추는 다트와 포크,그리고 휴지.딱풀.카스텔라 따위를 주고받는 풍습이 널리 번지고 있다 한다.오죽 답답 하고 초조하면 그런 새 풍습까지 등장할까 이해도 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수험생들의 마음가짐이다.그런 풍습보다는 수험생의 마음속에 안정과 평화를 심어주는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꼭 종교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져 마음을 가라앉히는게 좋다는 조언도 귀기울여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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