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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대통령이 빠진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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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이명박 대통령은 531만7708표 차로 당선됐다.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선거 중 사망한 4대 대선을 제외하면 가장 큰 표차다. 그 지지율이 반토막나는 데 취임 후 석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14일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조사 결과는 23%다. 오는 3일이 취임 100일이다. 그런데 48.7% 득표가 벌써 20%대로 곤두박질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은 “하필 쇠고기 문제로 시끄러울 때 조사를 해서…”라고 역정을 냈다. 이 소나기만 피하면 될까. 최근 다른 조사를 봐도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경제를 장기로 내세운 정부에 기름값까지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니 ‘747’ 공약도 제대로 뜰지 걱정이다. 허니문이란 말도 한번 못 꺼내보고 이런 꼴을 당했다. 그렇다고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나마 임기 초 혹독한 국민의 질책이 약이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이 정부는 ‘CEO 대통령’에 매달린다. ‘정치는 4류, 기업은 2류’라는 믿음은 다른 국민들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모든 것을 CEO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과 정치에는 엄연히 서로 다른 고유 영역이 있다. CEO가 내세우는 실용주의라는 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는 사회주의에 자본주의를 끌어들였기에 의미가 있다. 시장경제가 기본 질서인 한국에서는 뭘 하자는 건지 정체성만 흐릴 수 있다.

CEO는 취임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정 기간 소신대로 밀어갈 수 있다. 조직을 만들고, 없애고, 정리해고를 할 수도 있다. ‘이윤’이라는 실용적 목표를 향해 달리기만 하면 된다. 대통령은 다르다. 국민은 돈만 주면 고용하고, 언제든 잘라버릴 수 있는 고용원이 아니다. 자신을 찍었건 경쟁자를 찍었건 모두 이 나라의 주인이다. 받은 만큼 주고, 준 만큼 받는 비즈니스 관계일 수는 없다.

지난 13일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고문들을 만나 “나는 누구와도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경쟁의 끝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제왕으로 군림하는 게 아니다. CEO처럼 경쟁자를 모두 밀어낼 수 없다. 경쟁자에게 복종을 요구하고, 자기 사람만으로 임원진을 구성할 수도 없다. 정치에서는 복종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포용하는 것으로 경쟁은 끝난다.

CEO의 힘은 돈에서 나온다. 정치인은 다르다. 여론이 힘이다.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하고, 그것으로 지지 세력을 넓히는 것이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사실 이 대통령을 찍은 48.7%가 모두 지지자는 아니다. 지난 정부에 대한 거부 세력들이다. 지난 총선의 표가 분명한 흐름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이해관계가 분명한 CEO식 정치만 해왔다. 한나라당 공천 과정에서 경쟁 세력을 정리해고 했다. 정당 공천에서 물갈이는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기준이어야 승복한다. 미운 놈에게만 갖다 붙이는 기준은 구실일 뿐이다. 아직껏 그 문제로 씨름한다. 전화 한 통화에 감복할 사람조차 끌어안을 가슴이 없다.

CEO는 흰 쥐, 까만 쥐를 가릴 이유가 없다. 돈만 잘 벌면 된다. 그러나 장관은 일만 잘하면 되는 자리가 아니다. 도덕성이 중요하다. 어린 학생들이 존경하고 따라 배울 사람이어야 한다. 투기하지 않는 사람은 땅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순 없는 노릇이다. 쇠고기 파동에서 보면 돈을 잘 버는 것 같지도 않다. “소도 10년은 살아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유능한 장관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CEO는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면 된다. 심판은 법원에 맡길 수 있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달래는 것까지 본인의 몫이다. 비이성적 주장이라도 들어주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조정은커녕 시세를 따라가기에도 허둥지둥이다. 외곽에 버티고 있는 대주주들의 원심력에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린다. 조선시대 왕들이 쓸데없이 공신들을 견제한 게 아니다.

CEO가 잘하는 건 물건이 시원찮으면 리콜을 한다는 점이다. 대운하를 ‘하천 정비’라고 눈속임해 덮고 가려 하다가는 기업이 망한다. 어차피 여론 지지라는 재원 없이는 신규투자를 할 수도 없다. CEO는 또 결과에 분명한 책임을 진다. “자기 임기 중에 다 해놓고 가겠다고 얘기해 놓고…”라고 떠넘기지 않는다.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려면 무능한 장관들부터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으로서 포용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지지도를 다시 끌어올리기는 어렵다.

김진국 정치·국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