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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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민우가 무심코 받았다.
『그래요.요즘 영화나 연극.출판등을 보면 하나같이 여자들이 눈치를 보고 아부하는 것들 뿐이죠.여성영화.여성연극.여성소설…실질적인 파워를 가진 그들의 관심을 끌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죠.민우씨가 만일 이런 기획안을 충무로 영화 관에 내놓았다면 다들 미쳤다고 할 거예요.이 영화는 결국 「여자를 잡고 살아라」가 주제일 테니까요.그러나 이 문제는 서로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거예요.그래서 저는 민우씨가 우리나라 남성들을 용기있는 성인으로 깨우쳐보자는 이번 영화기획에는 절대적으로 찬동해요.』 채영은 상운의 눈치를 몰래 살피며 말을 끝냈다.상운은 여전히 한곳을 응시하며 듣는 둥 마는둥 했다.
『긴장감!참 좋은 말이오.』 민우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에게 박탈해간 것이 바로 긴장감이죠.긴장감이 없으면 사람들은 권태에 시달릴 수밖에 없죠.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신체적으로 편안한데 억지로 긴장감을 가질 수는 없고…현대사회에서 앞으로의 숙제는 어떻게 하면 사 람들에게 그긴장감을 당위성있게 발전적으로 부여할 수 있느냐는 걸거요.』 『그 방법이 무어라고 생각하오.』 상운이 싸늘하게 물었다.
『글쎄요.아무래도 예술이나 스포츠에 있지 않을까요? 그 이상의 일탈은 아무래도 이 거대사회가 용인하지 않을테고….』 『선생,내가 왜 권태에 빠져들었는지 아시오?』 민우는 심상찮은 상운의 기색에 자기도 모르게 긴장됐다.
『주체할 수 없는 돈 때문이었소.어느날 아이들을 키우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소.내가 이 아이들을 잘 키워 뭐하나.그래 봤자 대학에 가거나 사업을 하는 게 고작일텐데…그 끝의 도달점은 무엇인가.결국 돈과 명예가 아닌가.그 돈과 명예라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무수히 줄 수 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가지고 안되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그후 나는 아이들을 키울 희망을 잃었소.그들이 어떻게 자라든 나는 언제라도 그들을 최고일류로 만들 능력이 있으니까…그후 나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소.자식을 키우는 것도 재미가 없는데 또 어떠한 것이 나의 흥미를 끌 수 있겠소.그 후 나는 그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봤소.예술이나 스포츠 뿐만 아니라 마약이나 살인. 강간.사기.하늘을 나는 것까지도…그러나권태는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깊어질 뿐이었소.선생!지금 내가 갖고 있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글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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