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빅 브러더' 중국] 1. 달라진 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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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는 갔다. 이젠 아시아가 화두다. 미국.유럽 시장은 아시아산 제품들로 넘쳐 흐른다. 서방 자본은 중국이라는 블랙홀로 자진해서 빨려든다. 이제 아시아를 모르면 세계를 논할 수 없다. 본지가 1996년부터 '아시아 프레스 포럼'을 개최하고, 이를 '아시아-유럽 프레스 포럼'으로 확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달라진 아시아의 모습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본지는 매주 1회 '아시아 특집면'을 마련한다.[편집자]

중국 외교의 금과옥조는 '도광양회(韜光養晦)'다.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유훈(遺訓)이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더 이상 밝음을 가리지도(韜光), 어둠을 키우지도(養晦) 않는다. 군사도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그 첫 무대가 동남아다. 동남아의 새로운 '빅 브러더'로 등장한 중국의 실체를 현지에서 시리즈로 살펴본다.

2004년 2월 7일 중국 남단 하이난(海南)섬의 해안도시 링수이(陵水). 시내에서도 전투기가 음속을 넘을 때 내는 '꽝'하는 굉음이 10분 간격으로 고막을 때렸다. 시에서 5km 정도 떨어진 전투비행기지 진입로 앞에는 '군사시설(營區)'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하이난섬 공군기지. 이곳은 3년 전만 해도 바람과 파도만 스쳐가던 곳이었다. 그러나 2001년 4월 1일 미국의 EP-3 정찰기가 이곳 상공에 나타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F-8 전투기 편대가 즉각 떠올라 정찰기를 추격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돌연 중국 전투기 한대가 미 정찰기와 충돌했다. 결국 전투기는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정찰기는 하이난섬에 불시착했다.

이 사건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중.미 간 첫 군사적 충돌'에 머물지 않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시각이 '잠재적 적성국'에서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아시아 대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후진타오(胡錦濤)주석이 프랑스 파리에서 선보인 '평화적 굴기(起)외교'에는 정찰기.전투기 충돌사건 이후 꾸준히 달라져온 중국의 새 외교.군사 전략이 응축돼 있다. '평화적 굴기외교'란 '평화적으로 자주.독립적인 외교를 추구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변신은 눈부셨다. 동남아우호협력조약(TAC)에 가입했고, 아세안 국가들과는 정례 안보포럼을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인도와 함께 상하이(上海) 앞바다에서 양측 해군 2000여명이 참가하는 해상합동훈련도 했다.

국제사회에서 따돌림 당하는 미얀마도 품에 안았다. 2002년 12월 장쩌민(江澤民) 군사위 주석이 미얀마를 방문한 뒤 미얀마 군사정부의 장성들이 줄줄이 베이징을 찾았다. 중국은 레이더 등 첨단 무기와 2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했다.

동남아의 분위기도 변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사무총장 특보인 테르무사크(52.태국)는 "중국은 아세안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규정했다. 베트남 언론인 두옹 딘 후이(30)는 "중국은 미국과 똑같이 중요한 협력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1월 태국에서 실시된 '우방국 여론조사'에서 76%가 '제1의 우방'으로 중국을 꼽았다.

하노이.방콕.링수이=이양수 특파원.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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